닭 머리에선 무슨 맛이 날까
홍콩은 대표적인 미식 여행지다. 온갖 다양한 먹거리가 많고 가까운 이곳에 얼마전 팸투어를 다녀왔다. 홍콩관광청이 주관한 글로벌 미디어 미식행사로 1주일간 홍콩의 파인다이닝과 스트릿 푸드 등 먹부림을 체험했다.
홍콩관광청에서 마련한 일정은 일주일간 점심 저녁 모두 파인다이닝 체험. 내 팔자에 이런 호사를 누려볼 기회가 또 있겠나 싶을만큼 감사하고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에 익숙하지 못한 입맛이다 보니, 한마디로 너무 좋은 것을 점심 저녁 계속해서 매일같이 접하다보니 나중엔 뭐가 좋은지,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는 한계효용을 넘어선 상태였다고나 할까. 누가 들으면 배불러 터진, 재수없는 소리라고 할 지 모르지만 매 끼니 그런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한국사람들이 아닌 외국사람들과 매 끼니 ‘mingle’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솔직히... 숨막히고 불편한 상황, 충분히 상상이 되지 않나. 그런 자리에서 유독 과묵해지는 나같은 사람에겐 꽤나 힘든 고역이기도 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들, 편한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함께 먹는 것이다.
지난 10월23일부터 27일까지의 홍콩 미식팸을 정리해 본다.
10월23일 홍콩섬 노스포인트 지역에 있는 하얏트 센트릭 호텔에 도착한 것은 1시 반 정도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나니 저녁 공식 일정까지는 4시간 정도 남았다.
호텔 주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호텔 앞은 해안, 뒤편은 시장 등 현지인들의 삶의 현장이 뒤섞인 곳이었다. 주변이 세련되거나 정돈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삶의 활기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호텔 앞은 자바 스트릿 마켓이라는 재래시장을 비롯해 춘영 스트릿 마켓 등이 있어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춘영 스트릿 마켓은 양편에 늘어선 시장 길 사이로 트램이 지나가는 곳이라 유명해졌다. 방콕의 매끌렁 시장처럼 아슬아슬하고 정신없는 그런 식은 아니지만 나름 정신은 없는편? 과일이나 야채, 약재 따위를 파는 곳이야 한국과 비슷하지만 생선이나 육류를 파는 곳은 좀 적나라하다고 할까. 특히 생선을 부위별로 잘라 문 입구에 걸어놓거나 내장들을 주루룩 진열해놨다. 우리식 시장은 진열장 안에, 포장이 되어서 고깃덩이가 보이는 식이라면 여기는 눈앞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길바닥에 늘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돼지 다리를 주루룩 걸어놓은 것은 좀 기괴하게도 느껴졌다. 닭을 파는 곳은 닭장에 살아 있는 닭들이 가득하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시장에서 살아 있는 닭을 ‘저 놈’ 하고 고르면 아주머니가 즉석에서 잡아줬었는데 여기도 그런 식이다. 그러고 보니 나 중학교 때도 엄마랑 같이 시작가면 살아 있는 닭 중에서 골라 아주머니가 잡아주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때 닭을 즉석에서 잡아 피를 빼고 탈수기 비슷한데 넣어 돌려 털을 뽑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생선가게에도 싱싱한 생선들이 널려 있었다. 길이가 1미터가 넘어 보이는 생선들. 다금바리나 대구, 방어처럼 큰 생선인데 아무튼 이름을 모르겠는 큰 생선부터 작은 생선과 각종 어패류들이 즐비했다. 좀 섬뜩했던 부분은 엄청나게 큰 생선의 몸을 갈라 큼직하게 토막낸 덩이들을 늘어놨다. 나머지 절반의 몸과 머리는 옆에 그대로 놓여 있는데 심장처럼 보이는 내장이 펄떡이며 살아 있는 것이었다!
생선가게 뿐 아니라 구운 가금류와 고기를 파는 바베큐집도 흥미로웠다. 닭과 돼지는 물론 거위, 비둘기, 각종 내장을 구운 것들이 유리 진열장 앞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큼직한 거위는 몸통, 머리와 목만 잘라 놓은 것, 다리 등이 분리되어 걸려 있었고 닭보다 작고 병아리보다 큰 사이즈의 비둘기는 통째로 구워져 있었다. 갈색빛으로 구워진 영롱한 빛깔을 보니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나에겐 근사한 저녁 만찬이 기다리고 있으니 시장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 대신 가볍게 허기를 달래는 차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에서 쪄낸 청펀과 샤오마이를 시장에서 한접시 샀다. 몇천원 하지 않는 시장 음식인데 특히 청펀이 훌륭하다. 한국에서 청펀을 먹을 때는 물에 불린 떡 처럼 조직이 풀어지는 식이 많았는데 이건 얇으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유지한다. 그래서 별거 아니지만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가 중요한가보다.
가볍게 먹었으니 이제는 산책. 호텔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에 유명한 관광포인트가 있다. 포토제닉한 곳으로 유명하다는 익청 빌딩. 몬스터 빌딩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에도 나왔던 곳. 아마 이 사진 보면 누구나 ‘아하’ 할 만한 곳이다.
닭장, 쪽방으로 표현하기도 힘든 기기묘묘하고 조밀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한 곳. 1960년대에 지어져 끊임없이 증개축을 하면서 이런 모양이 됐다고 한다. 내부는들어가보지 못했으나 무척 궁금하다. 얼마나 좁은 공간일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겉에서 봤을 때 너무나 열악해보이기 그지 없다. 길 건너편에도 몬스터 빌딩과 비슷한 외관의 빌딩이 있다. 1층은 시장통이다. 둘 다 주상복합 아파트인 셈인데 이런 열악한 환경 치고 집값 자체는 엄청나게 비싸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건물 앞에 몰려와 사진을 찍어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며 무슨생각을 할지도 궁금했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사진을 찍고 있다. ㅠㅠ
저녁은 홍콩퀴진 1983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홍콩식 즉,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광둥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요리는 2가지다. 하나는 찹쌀과 닭고기로 동그랗게 빚은 일종의 주먹밥? 혹은 볼을 닭 껍질로 감싸서 소스를 발라 구운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모양이 신기했다. 말하자면 닭껍질을 봉제선없이 동그랗게 감싸낸 모양인데 맛도 모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요리는 닭을 3가지 버전으로 요리한 것이다. 통째로 요리했다는 건 비슷한데 소스나 구운 방식이 좀 달랐다. 솔트 베이크드 치킨, 크리스피 치킨, 스모크드 소이 소스 치킨. 개인적으로는 영롱한 갈색빛을 띠게 바싹 구운 크리스피 치킨이 제일 맛있었다. 닭이 머리까지 통째로 나와서 맛이 궁금하긴 했다. 예전에 피렌체에서 닭 목이 통째로 나왔던 적이 있는데 그건 못먹었다. 찜요리라서 그런지 먹기가 조금 거북했다. 그런데 튀기다시피 바싹 구워져 나온 크리스피 치킨을 보니 먹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리 부분은 딱딱해서 그부분을 피해 머리 부분을 살짝 씹었더니 와작하고 씹힌다. 뇌부분이 씹히는데 아구간같은 맛이 났다.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이래서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건가. 아무튼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말레이시아에서 온 기자가 흥미롭다는 듯,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보고 생긋 웃었다. 하기사 내가 닭 머리를 쳐다보며 몇차례 주춤주춤 하는 그런 모습도 그는 죽 지켜봤는지 기다렸다는 듯, 재미있다는 듯 활짝 웃는 그를 향해 나도 웃어줬다. 식사 후 함께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는 맛이 어땠냐고 물었다.진짜 맛이 괜찮았던터라 좋았다고 하자 그는 자기는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다. 뭐냐... 나만 이상한 사람 된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