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
전날의 뱀탕 때문이었을까. 어젯 밤엔 엄청나게 노곤한가 싶더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꿀잠을 잔 기분이다. 넘나 개운하다. 몸이 재조립되고 리부팅된 것 같다고나 할까. 이래서 과거에 뱀탕을 찾았나...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이 있는 노스포인트에서 페리터미널이 있는 해양박물관까지 뛰어갔다 왔다. 왕복하니 대충 12키로 정도가 찍힌다. 기온이 27~28도 정도로 높은 편이라 힘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뛸만했다.
호텔에 돌아와 씻고 나서 근처에 있는 60년 넘은 두부푸딩 집을 찾았다. 아침 식사로 즐겨먹는 두부푸딩인데 연두부와 거의 비슷했다. 테이블 위에 설탕, 간장이 놓여있었고 취향껏 얹어 먹는 식이다. 그냥 먹으니 담백하고 구수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설탕을 뿌려 먹으라고 권해 그렇게 먹어봤더니 디저트 느낌도 나면서 식감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원상태의 것을 먹는 것으로. 그렇게 두부를 먹고 호텔로 슬슬 돌아와 본격적인 조식을 먹었다. 조식을 뭉개고 가기엔 땡기는 메뉴가 꽤 많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제는 딤섬과 각종 요리를 야무지게 먹었으니 오늘은 따끈한 완탕면과 죽, 과일 정도만 챙겨먹는 것으로. 조식 완탕면이라 별 기대 안했는데 생각보다 탱글탱글 새우가 엄청 실하다.
조식후의 일정은 홍콩섬 동쪽 차이완 지역에 있는 두부공장. 잘나가는 셰프이자 식품 사업가인 비키 라우가 운영하는 두부공장 ‘안’이라는 곳이다. 일반 기업 사무실처럼 생긴 깔끔한 복도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부를 제조하는 설비가 있다. 콩을 가공해 두부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며 시연했다. 간수를 붓고 두부를 굳혀 완성하는 과정까지 보여줬는데 서양인들 눈에는 그 장면이 엄청 신기한 것 같았다. 나만 해도 예전에 할머니가 손두부를 만들던 모습을 봤었고 동네 시장에서도 두부를 만드는 모습을 종종 봤던터라 두부 만드는 모습에 딱히 감흥을 못 느낀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온 기자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기도 했다. 솔직히 내겐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곳에서 만난 재미있는 것은 발효두부다. 쌀로 빚은 술과 향신료, 발효균 등을 주입해 만든 발효 두부는 젓갈과 블루치즈가 뒤섞인 고약한 냄새가 났다. 1년씩 발효시킨 이 두부는 쏘는 맛과 함께 특유의 시큼한 향과 맛이 있다. 바게트 조각에 이 발효 두부를 발라 먹어봤는데 뒷맛이 의외로 은은하고 기분좋게 남았다. 취두부와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취두부가 훨씬 독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두부공장을 견학한 뒤 향한 곳은 비키 라우 셰프가 지난해 새롭게 출범시킨 콩 전문 레스토랑 ‘모라’였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지속가능성’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 레스토랑은 일주일간 홍콩에서 방문했던 레스토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콩의 풍미와 속성을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끌어낸 곳이다. 한국식 콩 요리와는 또 다른, 한중일의 분위기가 고루 섞인 것을 기반으로 섬세한 맛과 매력을 살렸다. 담백한데 자꾸 생각나는 그런 맛이다. 홍콩을 여행하게 된다면 꼭 가보시길 강추한다. 특히 우리가 콩국수 먹을 때 함께 마시는 콩국물을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또 이번 여행일정에서는 와인보다 스파클링 티를 페어링하는 레스토랑이 많았던 점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스파클링 티를 음식에 곁들였다. 톡 쏘는 탄산의 촉감과 차의 깊고 차분한 맛이 결합되어 예상외로 입맛을 돋워주는 궁합을 자랑했다. 호지차, 재스민차 등 우리가 아는 고유의 맛과 향을 가진 차를 스파클링과 함께 재단장한 브랜드도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단 맛이 없는 스파클링티가 음식과 곁들이기 좋았다.
오후엔 센트럴 지역에서 디저트 탐색에 나섰다. 베이크하우스야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고 일본식 빙수인 카키고리를 파는 ‘샤리샤리’는 꼬불꼬불 줄을 늘어섰다. 부드러운 우유얼음에 달콤한 토핑이 올려진 빙수인데 그렇게 맛있다고. 그래봤자 빙수지. 한국에도 빙수 맛있는 곳 많은데 싶어 지나쳤지만 좀 궁금하긴 하다. 그러고 보면 홍콩은 더운데도 빙수 전문점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내가 먹기로 정한 것은 거북이젤리. 거북이 등껍질에 각종 한약재를 같이 넣고 푹 끓여 식힌 뒤 굳힌 젤리다. 타이쿤 근처에 있는 공리진료죽자수는 70년이 넘은 가게. 장국영이 영화 시티보이즈를 촬영한 장소이기도 한데 노포의 아우리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짙은 갈색 젤리에서 특별한 향은 나지 않았다. 맛은 한약재에서 나는 씁쓸 들큰한 맛이 느껴지는 정도지만 과하지는 않다. 함께 준 사탕수수 시럽을 끼얹어 먹으니 달콤하게 즐길만했다.
홍콩 사람들이 흔히 먹는 길거리 간식 중에는 터틀젤리도 있다. 말 그대로 거북이젤리다. 거북이 등껍질과 각종 한약재를 푹 끓인 뒤 식혀 굳힌 것이다. 허브티 등 건강음료를 주로 파는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센트럴의 복합문화공간 타이쿤 근처에 있는 ‘공리진료죽자수’라는 곳에서 터틀젤리를 한 통 샀다. 짙은 갈색의 젤리에서 특별한 향은 나지 않았다. 맛도 한약재에서 나는 특유의 쌉쌀함이 조금 느껴지는 정도였다. 함께 준 사탕수수 시럽을 끼얹으니 달콤하게 즐길 만했다. 양이 제법 되는지라 한 통을 다 먹으면 상당한 포만감을 준다. 이 젤리는 디톡스와 열기 배출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젊은 여성들도 즐겨 먹는 간식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터틀젤리를 산 가게는 70년이 넘은 곳으로, 배우 장궈룽(張國榮)이 영화 <시티보이즈>를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했다.
저녁을 먹은 곳은 타이쿤 안에 있는 차이니즈 라이브러리. 외관부터 인테리어, 메뉴 등이 서양에서 온 여행객에 맞춰진 듯 했다. 중국 음식을 프렌치 스타일로 풀어낸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내가 이곳에서 먹기로 한 것은 딤섬이다. 정통 딤섬집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한 딤섬이 궁금했다. 실제로 나오는 것을 보니 우리가 흔히 아는 하가우, 샤오마이 이런 것이 아니라 락사를 넣은 샤오롱바오, 칠리소스로 맛을 낸 새우딤섬 등 새로운 모양과 맛이 많았다. 알 줄 알았는데 모르던 맛이랄까. 개인적으로 딤섬은 정통 광둥식이 나은 것 같다. 새로운 재료와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도 좋지만 난 익히 아는, 인지하고 있는 그 맛, 그 맛의 딤섬이 좋다. 다행히 내일 아침엔 동네 사람들이 가는 딤섬집을 가기로 했으므로 이날은 차이니즈 라이브러리의 럭셔리한 분위기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