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는 시간을 내기 힘들지 않냐는 것이다.
아침에는 출근시간에 쫓기고 저녁은 퇴근해서 피곤하고 어수선하고 이것저것 하면 밤 10시, 11시일텐데
언제 뛰냐고.
우리가 갖고 싶은 좋은 루틴을 막는 모든 핑계가 시간이 없어서다.
시간이 애매해서, 시간 내기가 힘들어서, 뭔가를 하기엔 마땅찮은 시간이라서.
나 역시 그러하다.
300미터도 안되는 집 앞에 우이천이 있으니 살살 걸어나가면 바로 뛸 수 있는데도
이런저런 핑곗거리가 많았다.
사실 300미터도 만사 귀찮을 때 걸을라면 꽤 귀찮은 거리다.
이제라도 뛰는 거리를 확보하자고 결심한 지 불과 며칠 지났을 뿐인데
어제도 밤 10시 30분에 귀가했다.
아,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뛰기 힘들겠지.
게다가 살짝살짝 빗방울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치 사우나 한증막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물방울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한달 전쯤에도 개천변 나가서 2키로 정도 뛰었을까 싶은데
갑자기 후두둑 하더니 비가 쏟아졌다.
집앞으로 급히 뛰어들어오는데도
순식간에 물에 쫄딱 젖고 말았다.
하긴 그 이후 최근 한달간 밤에 미친듯한 소나기 퍼부은 것이 어디 하루이틀이냐고
토요일에 15키로 정도를 소화했으니 월요일엔 7키로 이상은 뛰어야겠다고 바로 그저께 결심했었다.
그런데 귀가시간이 10시 반.
날은 후텁지근하고 비도 올 것 같고.
괜히 나갔다가 쫄딱 맞고 들어오겠지.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온갖 갈등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결심이 섰다.
그냥 아파트라도 뱅뱅 돌자.
나가서 우리 동과 앞동만 묶어 돌아도 350미터 정도 되니까 열바퀴만 돌면 3.5키로다.
집에 가방을 두고 바로 운동복을 갈아입고 나섰다.
요즘 출퇴근 길에 자주 듣는 윌라 오디오북 소설을 들으며 뛰기 위해 무선 이어폰도 꽂았다.
굳이 개천변을 뛰어냐 러닝이냐, 그냥 아파트 뱅뱅 돌아도 되지.
뛰기 시작했다.
살짝쿵 빗방울이 얼굴에 닿는듯도 했으나 그뿐, 더 내리지는 않았다.
소설을 들으며 뛰다보니 지루함이 좀 덜어져서 좋았다.
음악도 괜찮은데 몰입감 있는 소설 듣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뛰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다시 말해 별 생각없이 계속 돌고 있었다.
장애물이라면 간간이 아파트 밖에 쭈그리고 앉은 주민이 피워올리는 담배연기,
그리고 주차하기 위해 비적비적 들어오는 차들.
그래도 달려드는 차들은 아닌지라 그럭저럭 뛸 만 했다.
내가 사는 동 주변을 돌다가 다른 동을 도는 식으로 살짝 변주도 했는데
아무튼 이리저리 뛰다보니 8키로를 넘겼다는 시계 신호가 울렸고
시간도 50분이 넘었다.
예정했던 7키로 넘었으니 이정도면 됐다.
집에 다시 올라가니 11시 반정도.
바로 씻고나니 쾌적함과 개운함,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에 날아갈 것 같다.
시간만 자투리가 아니라 공간도 상황도 자투리, 자투리를 잘 활용하자.
티끌모아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