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초독서증"에 관하여
이중언어라는 것이 아무래도 아동 발달 및 교육에 관한 컨텐츠이다 보니 유아교육을 전공한 동생에게, 교육 관련해서 헷갈리는 부분을 종종 묻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동생은, 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이론은 없다고 하며, 학교에서는 A 보다 B가 낫다고 배웠는데 요즘은 B 가 A 보다 낫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고. 그러나 매년 연구결과가 새로 나오는 만큼, 비교적 최신 이론을 따라가는 편이 조금 더 안전한 것 같다고 한다.
최근에 동생과 통화를 하며, 이중언어에 관련된 컨텐츠를 하고 있고 거기에 아이의 독서를 위해 동화도 함께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이중언어도 언어인데 '초독서증'이라는 것을 주의하라고 당부해 주었다. 내용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던 것. 나도 놓치고 있던 부분이 아닌가 싶어, 오늘 기회를 빌어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초독서증'은 어린아이가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읽는 현상을 말한다. 자폐증의 증상 중 하나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과도한 조기 교육으로 인해 나타나는 유사 자폐증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인 듯한데,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19981129/7399879/9
이해 없이 기계적 읽기: 아이들은 단어를 정확하게 읽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https://www.i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3
사회성 부족: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나 대화 능력이 떨어진다.
특정 사물에 대한 과도한 관심: 글자나 숫자에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원인: 전문가들은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글, 영어, 수학 등을 조건반사적으로 가르치는 과도한 조기 교육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7506
간단하지만 지나친 조기 교육을 지양하는 것이다.
3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무리한 학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자주 안아주며, 함께 놀이를 즐기는 등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것.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19981213/7403702/1?
또한 책 읽기 외에도 놀이, 음악, 미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인적인 발달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과도한 교육열이 아이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아이의 성장 속도와 관심사를 존중하며 자연스러운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
물론, 초독서증을 유발하는 정확한 기인은 밝혀진 바 없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diseases/hyperlexia
다만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비이성적이고 광적인 교육열은 비교적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이니, 이 부분은 참고하도록 하자. 본인들의 욕망을 위해 3~4세부터 아이를 교육으로 착취하는 행위를 권장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나라와는 결이 다른 곳이다. (물론 미국도 나름대로의 사회적 문제가 많아 보이긴 한다.)
마침 교육관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공의 기준이 '학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기준이 너무 좁고 일방적인 환경에서는, 교육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착각되곤 한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 잘 되라고 하는 거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 ‘잘됨’이란 무엇인지 고민은 해 봤을지 의문이며 아이들도 나중에 자라 동일하게 생각할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나 역시 한때 영어를 수단이 아닌 목적처럼 여긴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젊고 의욕적일 때 아이를 낳았더라면, 아마 나 또한 영재교육이나 조기교육에 집착하며 아이를 무리하게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보고, 또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본 결과, 현재까지의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영어든, 성적이든, 그것은 사람이 자라나 사회 속에서 기능하기 위한 극히 일부의 조건에 불과하다는 것. 진정한 ‘잘됨’의 조건은 단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이 지구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동생과의 대화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무리해서 가르치지 않도록 하자.
또한 어릴 적 과도한 독서교육에 대한 부작용을 다뤘으니, 다음 편에는 이미 첫 글에서 쓴 바 있는 "이중언어 교육 관련한 부작용"은 없는지, 적당한 외국어 노출 시간은 몇 시간 정도인지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