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갸우뚱거리며 같이 사는 이야기
주로 야행성이며, 새벽에 활동량이 많고, 높은 곳을 좋아한다.
사냥 본능이 강해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며, 장난감이나 작은 물체를 쫓는다.
자기 몸을 핥는 ‘그루밍’에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쓰며, 청결 유지에 집착하는 편이다.
인간과의 교감은 개처럼 직접적이지 않지만, 특정한 방식(머리 비비기, 가르랑거리기)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믿는 사람에겐 강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억 마리가 반려동물로 사육되고 있으며, 도시 생태계에서 길고양이로도 적응해 살아간다.
고양이는 정말 '독립적인 동물'일까, 아니면 인간의 기대 속에 갇힌 오해일까?
고양이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고양이의 ‘무심함’을 매력이라고 느끼면서도, 말을 안 듣는다고 실망하진 않았을까
만약 고양이가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면—우리는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슬라임 고양이의 시점]
나는 고양이다.
……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슬라임이다.
하수구 깊숙한 곳.
어둡고 축축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그곳이 내 세상이었다.
나는 조용히 흐르며 존재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이름도 없이.
그러다 어느 날.
담벼락 위에서 조심조심 걷는, 하얀 고양이를 보았다.
세상에… 청결하고, 균형 잡히고, 무심한 듯 유연한 저 존재는 뭐지.
고양이란 생물은…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근사한가.
그 순간부터 나는 결심했다.
고양이가 되어야겠다.
슬라임 따위 그만두고, 나도 저 무심한 생물이 되리라.
이후의 기억은 조금 흐릿하다.
뭔가 스멀스멀 끓는 느낌, 탱글탱글해지는 느낌,
그리고—탁. 고양이의 모습으로 고체화됐다.
거울은 없지만, 나는 확신했다.
나 지금, 고양이다!!
[인간의 시점]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퇴근 후 편의점에서 참치캔 하나를 사서 집으로 가던 길.
눈발은 살짝 흩날리고, 거리는 적막했고,
길모퉁이에 뭔가 뒹굴뒹굴 구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말라 보였다.
뼈대가 앙상하고, 털도 축 처진 듯했다.
“얘… 너무 말라 보이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묘했다.
유리처럼 반사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었고,
그 고양이는 조용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뒷덜미를 맡겼다.
그날부터 우리 집엔 고양이가 생겼다.
아니, 고양이처럼 생긴 뭔가가.
[고양이의 시점]
사람이 사는 집은 처음이었지만 괜찮았다.
방바닥은 따뜻하고, 공간은 넓고, 이상한 상자에서 그림이 나오고,
그 중에서도 참치캔이라는 건… 혁명, 그 자체!!
슬라임일 땐 느껴본 적 없던 감각,
바로 ‘허기’였다.
배가 고프다니… 세상에 이런 자극적인 감정이 또 있을까.
나는 식탁 위에 올라앉아, 참치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인간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거기서 뭐해?"
인간은 나를 안고 조심스라 참치캔을 입에 떠넣어줬다.
아, 나 지금,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거구나.
[인간의 시점]
고양이는 원래
좁은 박스를 좋아하고
높이 올라가기를 좋아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털 그루밍을 하루에 몇 시간씩 하고
내가 아는 고양이는 그랬다.
그런데… 우리 집 이 고양이는 뭔가 이상하다.
관찰기록 1 – 박스에 관심 없음
택배 상자를 펼쳐놨더니 그냥 지나간다.
심지어 안 보고 지나간다.
고양이 맞나?
관찰기록 2 – 높이에 관심 없음
책장 위에 오르지 않는다.
식탁이나 침대 높이에서만 움직인다.
점프는 되는데… 안 한다. 귀찮은가?
관찰기록 3 – 그루밍을 딱 1분만 함
다른 고양이처럼 열심히 핥지 않는다.
간단하게만 하고 멈춘다.
그런데 이 고양이 녀석은 내가 커피를 마시면
그 녀석은 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내가 웃으면
고개를 천천히 갸우뚱거린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고개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면 그 녀석은
더 기울인다.
갸우뚱.
갸우뚱.
[고양이의 시점]
나는 여전히 관찰자다.
고양이로 살아가는 지금도.
내 집사는 아침이면 검은 물을 마신다.
그걸 마시고 나면 한숨을 쉰다.
집사는 가끔 혼잣말을 한다.
"너, 진짜 고양이 맞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의 발 위에 조용히 몸을 동그랗게 말아 넣는다.
말보다, 이게 더 정확하니까.
[인간의 시점]
어쩌면, 이 고양이는
이 집에서 나보다 더 먼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존재 같다.
나는 이 고양이의 이름을 지은 적이 없다.
그저 ‘야’ 혹은 ‘너’,
아니면 가끔 “이상한 녀석” 정도.
근데도 고양이는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식탁 의자 하나는 자기 자리로,
햇빛 잘 드는 거실 창가도 자기 차지로.
나보다 조용하고,
나보다 느긋하고,
나보다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듯한 눈.
밤이 깊으면 우리는 같이 잔다.
나는 이불을 덮고,
고양이는 그 이불 위,
내 무릎 근처에 동그랗게 누워 있다.
그리고 가끔,
잠결에,
이 고양이가
나보다 먼저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다.
[고양이의 시점]
사람이 웃는 표정은
고양이의 몸으로도 느껴진다.
뺨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
눈꼬리의 기울기,
숨소리의 리듬.
나는 오늘도 집사의 발밑에 조용히 앉아 있다.
그는 나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그도 고개를 기울인다.
갸우뚱.
갸우뚱.
[인간의 시점]
나는 아직도 이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오늘도
말 없이
같은 공간 안에 조용히 있다.
같은 햇빛을 쬐고,
같은 커피 향을 맡고,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기울인다.
갸우뚱.
갸우뚱.
그리고 이상하게,
그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