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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Oct 20. 2020

군대 후 바뀐 그

군대 가면 원래 그래?

군대 후 바뀐 그

내 중앙 동아리는 볼링 동아리였다. 나는 과 활동에 환멸을 느껴, 동기 언니와 중앙 동아리를 여러 개 전전하던 중, 볼링 동아리 회장이 그 당시, 친화력이 좋아서 과 언니와 같이 가입하게 됐다. 중앙동아리가 대부분 그런지, 아니면 우리 동아리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공대생들이었다. 대학교의 꽃이라고 불리는 ‘MT’를 또 다녀왔고 과 MT와는 다르게 화기애애한 MT 속에서 나는 ‘썸’이라는 것을 타게 됐다.

-학교 끝나고 뭐해? 영화 보러 갈래?
-주말에 뭐해?

그 썸을 동아리 사람들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다들, 우리 사이를 의심하긴 했으나 우리는 극구 부인했다. 학교 밖에서 시간을 가끔 보내긴 했지만, 사이를 규정짓지도 않았고,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그는 그 해 여름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군대 가면서 발목 잡고 싶지 않아서 인 가봐.’
 
라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 선배가 젠틀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지만,
그 해 여름방학 때 한번 같이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지하철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한 말없이 헤어졌고, 그 이후 어떠한 연락 하나 없이 그 선배는 군대를 갔다.
 
그런데, 사실 쿨했던 오빠인 줄 알았던 그는, 군대를 가더니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편지가 왔을 때는, 답장을 했다. 다른 여타 선배들도 나에게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 내용이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편지에서 ‘구속’의 향기가 났다고 해야 할까? 나는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았다.
 
그 이후 그는 편지 대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강원도의 지역번호가 033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처음 한 두 번은 받았지만,

“뭐해?”
“나 안 보고 싶어?”
“누구랑 있어?”
“친구 누구? 여자? 남자?”

나는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장난기 하나 없는 그 전화 속 목소리는 점차 밀도가 짙어졌다. 군대 가면 남자들이 한껏 외로워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한번 전화를 안 받으면 대체 쉬는 시간을 많이 주는지 부재중 통화가 여섯 통 이상은 와 있었고, 나는 033으로 시작하는 지역번호는 모두 다 안 받기 시작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그날이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친구들과 모여서 다 같이 놀고 헤어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서 핸드폰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문자를 보내고 있다가. 033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전화가 울렸다.
 
“미친놈이 또 왜 전화질이야”
 
라고 생각하며, 종료 버튼을 누르려하는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통에 손이 밀려서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염소야. 나야 잘 지내지? 나 안 보고 싶었어?”

이어폰으로 들리는 기쁜 듯한 목소리 뒤로 들리는 환호소리가 굉장히 거슬렸다.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오늘 크리스마스인데 뭐해?”
“놀고 집에 가는 길이야.”
“누구랑? 남자야? 여자야?”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인데?”
“남자는 안되지 당연히”
 
살짝 광기가 도는 듯한 목소리가 나와서 소름이 끼치는 그 순간,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염소 씨죠? 안녕하세요 저 얘 선임이에요~ 얘가 매일 염소 씨 얘기해요. 염소 씨가 답장도 안 해주고, 전화도 잘 안 받는다고 엄청 속상해해요~ 마음 바뀐 거 아니죠?”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마음이 바뀌다니? 내 얘기를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군대를 가더니 사람이 돌았나? 머릿속이 순간 퓨즈가 나가듯 검은색이 되어버렸다. 나는 퓨즈가 나간 채 열 받아서 버스에서 내려서 전화기에 대고 한껏 소리쳤다.

“저기요. 그 미친 새끼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바뀔 만한 ‘마음’ 한 톨도 없었 구요. 아무 사이 아니거든요?”

“얘는 매일 염소씨 보고 싶고 사랑한대요. 그리고 저 곧 전역하니까 좋은 여자 있음 소개해 주시고~”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은 얘나 쟤나 전혀 없어 보였다.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끊어!”

나는 짧고 굵게 전화기에 대고 외치고, 그 당시 내 싸이언 초콜릿폰을 아주 세게 닫았다.
그날은 나와 그의 마지막 전화였고, 그 선배와도 마지막 대화였으며, 그가 전역하고 학교에서 마주쳐도 전혀 모른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날 한 대 맞은 건 아니지? 근데, 대체 군대 가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다녔길래 그런 전화를 받게 하니.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잘 먹고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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