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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Oct 20. 2020

대학, 그리고 첫 엠티

찌질했던 선배들

대학, 그리고 첫 엠티


 대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과 엠티를 갔다. 나는 추가 합격자라 OT에 참여하지 못해서, 꽤 들떴었다. 또한, 술을 너무 먹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감을 안고 동기들과 버스에 올랐다. 말도 안 되는 남자 동기들의 여장부터, 협동 게임 기타 등등 통해, 모르던 선배들 그리고 동기들과 나름 끈끈한 우정을 쌓고 있었을 때, 그 사건이 발생됐다.

 

소위, ‘얼차려’라고 불리는 과 전통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로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군기를 잡는 행위였다. 물론, 취지는 이런 얼차려를 통해 동기간 우애를 돈독히 하며 선 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전통이랍시고, 이런 없어져야 할 전통행사(?)가 유지되는 것도 웃겼다. 꼭, 1학년 때 당했던 사람들이 ‘나도 대갚음해 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악에 받쳐 이어져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얼차려’는 저녁 늦은 시간 시작됐다. 선배들은 공포체험을 시켜주겠다며, 우리의 눈을 기다란 검은 천으로 가렸다. 우리는 앞사람의 어깨를 손으로 잡으며 선배들에 의하여 안내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천을 풀었을 때, 우리 앞에는 삭막한 공터와 한껏 표정을 굳힌 여러 선배들이 서 있었다.

 

얼차려는 해병대 캠프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우리가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그것을 착실하게 따랐는지가 의문이다. 어찌 되었든, 어둑한 공터 이곳저곳을 무슨 퀘스트를 완료해야 하 듯 엎드려뻗쳐, 유격 PT, 어깨동무하여 선착순으로 쪼그려 달리기 등 별별 기합을 받게 되었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몇 조금 부족한(?) 선배 셋이 있었는데 그들이 조금, 아니 많이 문제였다. 그들은 처음으로 선배가 된 우리의 바로 한 학번 위였다.


나에게는 한살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몇 재수생들에게는 동갑이기도 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선배가 되어, 위엄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선배로써 위엄을 보이기에는 다소 여러 역량들이 부족했다. 선배란 모름지기 후배를 이끌어줄 수 있을 때, 그 선배로서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한 학년 위라는 것만으로는 존중받을 수 없었으나, 그들은 정말 이날을 특히 벼려왔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냥 우리의 ‘기를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 왜, 중학교, 고등학교 때 잘 나가는 애들 옆에서 ‘시다’하는 애들이 더 깝죽거리는 모습, 바로 그런 것이었다. 우리 학번은 재수생들이 특히 많았었는데, 우리를 말로 갈구는 과정은 아주 졸렬했다.

 

“왜 동갑이 이러니까 기분 나빠?”

“꼴리면, 1년 먼저 들어오지 그랬어”

“재수는 왜 했니”


라는 정말 말문이 막힐 수준의 폭언이 시작됐다. 재수생 언니들은 이 내용을 들으며, 어이가 없어서 이를 악물었고, 우리들은 저들의 선을 넘은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할많하않.이라는 말이 정확이 어울릴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얼차려’가 어영부영 끝이 났다.


 다시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의 얼은 분위기 속에서 끝까지 그들은 사과의 말을 하진 않았다. 심지어, 그 선배 셋은 그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리 학번 남자들한테 들러붙어서 역겹게 웃으며 술을 마시자고 하고 있었다. 참고로, 재수생들 중에 남자라곤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동기들에게, 없던 동기애도 샘솟게 했으며, 과에 오만 갖은 정이 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동기간 우애는 정말 당시 돈독하게 됐던 것 같다)

 

군기는 때론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지나친 단지 본인들의 유흥거리로만, 혹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용되어서는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처음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선배’라고 하면 아주 높은 줄만 알았고,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엠티의 저 ‘얼차려’를 계기로 그 어려웠던 존재는 오히려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과 했던 몇 선배들 덕분에 우리 학번 대부분은 과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과 활동에서 고개를 돌리고 중앙 동아리를 찾아 나섰다.

종종 다른 수업을 듣는 중, 과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소문으로 들은 우리는 본인들도 ‘다 겪은 것’인데 ‘어린애’ 들이 ‘빠져서’ 틀려먹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 문화에 순응하지 못한 우리들이 틀려먹었을까. 아니면 ‘좋았던 문화’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사람이 틀려먹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잘못된 문화가 답습되었던 걸까.


-가끔, 궁금해진다. 지금도 그 ‘문화’가 이루어지고 있을지. 그리고 그 남자 좋아하던 지질하던 선배 3명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마, 여전히 찌질 찌질 거리며 인간관계에 큰 문제를 겪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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