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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Aug 19. 2021

연대가 쌓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8년 전 나는 중견기업에 입사했고 영업직으로 배정되었다. 영업부보다도 작은 규모의 영업소에는 직원이 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6명이 전부였다. 그 당시의 나는, 처음 입사한 회사에 그 흔한 아르바이트조차 해본 경험조차 없어서 상사가 묻는 말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하나하나 답하곤 했다. 여자 선배는 "모든 말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신입 사원으로서 어떤 질문에 대답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세 달이 흘렀다. 어느 정도 업무와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게 된 시점이 되었다. 업무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뒤부터는 잘못된 질문들이 많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업무지시를 내리면서 립스틱 색이 나와 잘 어울리는지를 판단하려 했고 머리 스타일은 어떻고, 치마 길이, 내 다리의 굵기 정도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원하는 얌전하고 상냥한 여성상을 나와 비교하며 나의 행동들에 트집 잡기 일 수였다. 그리고 물론 이런 것들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결국, 출근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이 왔고 그들의 언어폭력은 나에게 퇴사를 고민하게 했다.

혼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나는 용기를 내서 여자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냥 무시해"라는 답변이 나올까 조마조마했으나 우려와는 달리 나의 상황을 듣던 선배는 얼굴이 벌게지며 공감해주었다. 내가 그동안 받아온 성희롱 발언들은 사내 메신저, 회의 시간, 또는 개인 면담 과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선배는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조차 하고 있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선배가 단지 내 상황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한 내 착각은 그날의 대화를 통해 해소되었다. 그리고 영업소에는 나와 입사가 1년이 빠른 남자 선배도 있었는데 그 선배도 딱히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라고 성희롱 발언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너 어제랑 양말이 똑같네.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했어?"

(순화한 말일뿐 나보다 조금 더 다른 쪽으로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은 더 많았던 그 선배도 이런 질문들이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은 작은 연대의 일환이었다. 당당하게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두세 명이 뭉쳤기 때문에 그 상황을 조금 피할 수는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무례한 질문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다른 선배들이 앞장서서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업무 보고를 함으로써 질문들을 조금씩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 선배가 출산 휴가를 들어갔고 나의 우산은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사무실에서 유일한 여자가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을 받으면서 나는 조금씩 말을 받아치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 다리로 무슨 원피스를 입고 다녀?"


이런 질문들은 항상 내 다리를 투과할 듯한 시선과 함께했다. 아침부터 성희롱을 받은 나는 정통법으로 맞섰다.


"저 정도면 괜찮죠. 소장님도 이제 신경 좀 쓰셔야겠어요."


여기서 포인트는 '웃으며', '장난처럼' 정색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무차별적인 언어폭력들 앞에서 이전의 나의 정색들은 나를 농담도 구별 못 하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예은씨야. 화장 좀 하고 다녀, 남자는 어떻게 만나려고 해?"

(풀 메이크업인 상태라 조금 억울하긴 했다.)

"과장님도 결혼하셨는데, 제가 못할까 봐요? 걱정 감사합니다."


웃으면서 하는 대꾸에 남자 선배들은 당황하며 얼굴만 붉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나를 '관심병사'로 부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것이 함정이다.


그렇게 4년 뒤 영업부에서 본사로 발령이 되었다. 본사에서는 영업소처럼 매사에 간섭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팔뚝을 만진다든지, 머리를 쓰다듬는 등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여자인 직원들의 대부분이 한두 번쯤은 다 겪어본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남자 직원들도 불필요한 접촉을 당하곤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속한 부서는 그런 상황들을 인지하고 서로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성희롱적인 말, 불필요한 접촉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거의 고정적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은 주요 표적들이 그런 일들을 겪지 않도록 중간중간 업무적인 호출을 한다든지 그 상습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줄여나갔다. 이런 도움의 손길들은 작은 행동이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큰 위로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미투가 큰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성희롱 방지 교육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시작된 교육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 주었다. 전사적으로 시작된 교육은 분기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처음 당장은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가 없었지만 여러 번의 반복적인 교육은 조금씩 회사에 변화를 가져왔다.


회사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들이 여태껏 취한 행동들이 성희롱인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저 과거부터 으레 해왔던 행동들이었고 조금씩 조심해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교육은 기업문화에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나의 회사생활을 과거보다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내 곁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내가 회사에서 오래도록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특히 용기를 내서 나의 피해 사실을 믿을 만한 주변인에게 알렸던 일은 나의 전환점이었다. 무차별적인 성희롱의 발언 속에서, 입사 초 3개월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은 정말 처량했고 지옥 같았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주변 사람에게 나의 상황을 알렸을 때 받은 공감과 관심은 내가 회사생활을 더 오래 다닐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성희롱의 대상은 남녀 모두가 포함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했던 덕분이었다. 이런 공감과 관심은 다른 많은 피해자가 크게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대가 되어준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받은 선한 연대를 또 다른 피해자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러한 연대는 우리가 모두 조금 더 안전하고 다닐 수 있는 회사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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