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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Jul 04.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겪게 된 고용 불안과 우울감.


8년간 다닌 회사를 코로나로 인해 휴직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이런 이유로 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 달간 휴직이었다. 그때는 모두 좋아했다. 한 달 정도라면 월급은 못 받지만, 재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남들 다 한다는 제주도 한 달 살기 대신 약소하게 일주일 살기를 하며 즐겼다. 그러나 한 달이었던 기간은 처음에는 두 달, 석 달, 반년으로 야금야금 늘어나더니 결국 나는 1년이 넘는 기간을 휴직 상태로 지내고 있다.


처음 몇 달은 당연히 회사를 돌아갈 생각으로 약간의 불안한 마음은 있었으나 즐거웠다. 이렇게 상사나 주변 동료들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쉰 적도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통장 잔고는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마음속 희망을 불안이 좀먹고 있었다.

쉬는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커피 추출도 배워보았고, 영어도 배우고 있고, 아르바이트도 해보았고 취득한 자격증도 5개 이상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력서도 몇십 번을 썼고, 면접도 봤지만 번번이 고배만 들이킬 뿐이었다. 30대 초반의, 그것도 같은 업계도 아닌 차 업계로의 신입 직원으로 지원하는 일은 어려웠다. 경력직으로 지원하고 싶어도 내가 그동안 몸담았던 업계는 모두가 다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1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는 나의 모습이 한심했다. 1년이면 뭐라도 진득하게 공부라도 할 걸. 나는 점차 과거의 모습에 후회를 대입하며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우울감이 내 삶을 무기력하게 뒤덮기 시작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잦아졌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일도 많아졌다. 가끔 뉴스에서 보이는 업계에 대한 글들의 댓글 속에는 혐오만이 그득했다.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모두가 날이 선 칼날처럼 예민했다. 나름 열심히 살았던 지난 8년간의 나의 삶이 갑자기 부정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방구석에서 끝없는 자기혐오를 시작했다. 왜 이런 길을 택했나, 왜 나는 이런 일을 시작했는가, 왜 나는 기술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왜 장점조차 없는가, 더 나아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결국, 나는 심리상담소에 방문했다. 바닥을 치는 나의 마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심리상담소에서 MMPI라는 다면적 인성검사와 그림 심리 검사를 진행했다. 500개가 넘는 문항들을 읽고 표시하다 보니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검사 결과는 거의 바로 나왔고 NEGE라는 부정적인 정서와 신경증이 꽤 높게 나왔다. 그 후 상담가 선생님과 결과지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내가 현재 느끼는 무망감(희망이 없는 감정)은 스트레스를 만나며 발현됐고 이런 감정들은 변화하고 암담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주는 데 필요한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부정적인 마음들은 내 몸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필요한 감정'이 되리라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우울한 마음은 내가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물론 부정적 수치는 높게 나왔지만 이런 암담한 현실에서 높게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검사를 통해 이렇게 힘든 현실인데도 치료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놀랐고 또 한편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상담은 받았지만, 현재의 나는 여전히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는 여전히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의 미래는 어떻게 흐를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권고사직을 준비 중이다. 여전히 암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꿈틀거리고 있다. 비록 아직은 느리고 잘 못 하지만 이런 것 저런 것에 도전하다 보면 내 앞길이 조금은 환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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