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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Oct 08. 2021

대만과 중국, 그 갈등의 역사 + 미중 갈등

"침공", "전쟁"까지 언급되는 불안한 형국

영토의 크기가 큰 만큼이나(?)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는 중국, 최근 중국과 대만 사이에 "미국"까지 더해진 기사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특히 2019년 1월 시진핑 주석의 "무력통일"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이후 심심치 않게 "침공", "전쟁"과 같은 단어들이 기사 속에 보이곤 한다. 특히 미국도 대만해협에 항공모함, 군인 파견, 훈련, 무기 판매 등 대만의 방어력 수호를 지원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중국, 대만 양안 간 갈등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모습을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대만의 역사를 한번 가볍게 훑자면 과거 대만은 타이완 원주민의 나라였다. 그러다 약 1600년 즈음 청나라의 한족이 진출했으며 청일전쟁(1894-1895)으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시모노세키에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며 요동, 타이완 섬, 팽호 제도, 랴오둥 반도를 확보했다. (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청나라와 다른 독립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속국 지위를 청산한 건 덤.) 대만은 약 5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의 일본을 향한 감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편) 그러다 1949년 장제스가 중국 대륙을 통치하다가 국공 내전(1927-1950, 공산당이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내란.)에서 중국 공산당에게 밀려 1949년 타이베이로 정부 소재지를 옮긴 이후 대만섬을 국민당, 장제스가 실효 지배하게 이르렀다.


1971년 UN 총회에서 중국으로서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부여하는 UN 총회 제2758호의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중화민국에서 파견한 인원들은 더 이상 중국의 대표단으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에 중화민국 측은 추방되기보다는 자진 탈퇴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중화민국, 대만의 자충수처럼 작용했다.

그 이후 1992년 "92 공식"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요구"가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一個中國),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各自表述)"

서로 본인의 유리한 쪽으로 해석 가능한 이 문장은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현재 '전쟁'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정도로 더더욱 악화하는데 큰 몫을 했다.


독재 정당을 누리던 국민당을 누르고, 2000년 민진당(민주진보당), 대만 역사상 최초의 민주진보당 출신 총통 "천수이볜"이 당선된다. 외성 출신(대륙 출신 피난민)들이 대만의 기득권층으로 지배적이었을 때, 최초의 본성인 출신 총통이 된다. ( 1950년 생으로서 일본 식민지 이후 출생 ) 그러나 민진당과 국민당은 서로 엎치거니 뒤치거니 하며 어느 하나가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민당이 "양안 서비스 무역협정"을 강행하며 학생과 시민운동가가 대만 국회를 점거하는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난다. 이 협정은 중국이 거대한 자본력으로 노동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명분을 주어 대만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었다. 특히 30초 만에 통과된 이 협정은 국민의 의사를 전혀 헤아리지 않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태양화 학생운동(太陽花 學生運動)은 일명 318 학생 운동, 태양화 운동, 국회점령 사건 등으로 불리며,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중화민국의 대학생과 사회운동 세력이 중화민국 입법원에서 점거 농성한 중화민국의 학생·사회운동 사건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해바라기_학생_운동


그 결과 국민당과 당시의 총통 마잉주는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으로 당선되게 했다. 이는 천수이볜 이후 8년 만의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과거에 "나는 대만인이지만, 동시에 중국인이다."라는 것이 다수였던 것에 반해 2015년 이후 **"나는 대만인이며,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그룹의 비율이 증가됐다.

중첩된 정체성을 가진 핑크색 선이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만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맞물려 민진당이 힘을 잃는 듯했으나 홍콩에서 일국 양제를 외치며 "우산 혁명"이 일어났고 시진핑은 우산 혁명을 억압했고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고, 홍콩의 "자치권이 상실"된 일이 발생됐다. 이는 대만에 경각심과 불안감을 가져오기 충분했다. 당연 대만은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고 반중 정서가 점점 강해졌다.

햇볕이 더 강하게 내리쬔다면, 마땅히 우산을 펼쳐 햇볕을 막을 것이다

 -홍콩, 우산 혁명-


재 당선된 차이잉원은 "반중"을 더 강화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트럼프에게도 대만이 매우 좋은 패였다. 2017년 미국은 '미국 해군이 대만 가오슝(高雄)이나 여타 적합한 항구에 정기적으로 기항하고 태평양 사령부가 대만 군함의 정박 요청 접수를 허용하는' 수권법안을 찬성 21, 반대 6으로 통과시켰다. 심지어 2019년 대만 관계법을 보다 강화한 대만 보증법(2020년 티베트 지원법과 더불어 제정된 법안으로 미국에서 대만을 지원하기 위해 타이완 동맹 보호법과 함께 만든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도 가능했고,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미국이 지지하며, 대만이 다국적 군사훈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분쟁하는 가운데 대만의 반도체 회사 TSMC는 무섭게 성장했다. 2021년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며 과거 트럼프 정부 때처럼 적극적으로 지지를 하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며 입장은 표명하며 중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방어할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우회적인 간접적인 방향으로 돕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는 미국 방산업체의 이익보다 무기 수입국의 인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무기 수출정책을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을 하는 등 지난 8월 처음으로 대만에 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대만해협


그리고 지금, 요즘 뉴스에 미군이 대만의 방어 능력 강화를 위해 비밀리에 대만군을 훈련한다는 기사가 종종 보인다. 중국의 침공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훈련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국경절인 지난 1일부터 나흘 동안 약 150대의 전투기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투입, 대만을 겨냥한 군사활동을 기록적으로 확대했다. 이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5일 "모험 주의자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 역대급 공중 무력시위를 벌였고, 이에 대만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되며 '전쟁'얘기가 심상치 않게 나오는 중이다. “아프간의 현재는 곧 대만의 미래”라며 선전전에 열을 올리는 중국에 “대만의 안정을 해치면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확실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국. 하나의 중국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대만, 그런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세 나라의 갈등 상황이 심각한 지금, 대만해협에는 긴장 상황이 고조되고 있다.



<참고 뉴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1014467.html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607268?sid=104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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