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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몇 마리의 염소를 지나야 하는가

염소, 변하지 않은 존재, 변해온 이미지 : 고대 신, 희생양, 이단자

by CAPRICORN

FACT

염소는 잡식성이며, 높은 사회성과 호기심 많은 식성을 가진 동물이다.

암벽이나 가파른 절벽도 잘 타며, 강한 생존력과 번식력을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염소가 자연신 '판'의 형상으로 신격화되었다.

구약성경에서는 염소가 속죄의 희생양(scapegoat)으로 등장하며, 죄를 떠맡는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는 G.O.A.T (Greatest of All Time)의 줄임말로, 염소가 '역대 최고의 인물'을 뜻하는 밈으로 소비된다.


QUESTION

염소는 언제부터 ‘죄를 짊어진 자’로 상징되었을까?

우리는 왜 염소에게 '자유롭지만 이단적인' 이미지를 부여했을까?

고정된 생물학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염소의 이미지는 왜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해왔을까?

진실과 악의 기준은, 시대와 권력에 따라 바뀌는 것 아닐까?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진리는 항상 변화하는가?

특정 문화 속에서 특정 손가락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다르듯,
특정 문화 속에서 특정 동물이 가지는 상징도 달라진다.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까?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 속 염소는, 이미지가 극적으로 바뀐 동물 중 하나다.
“염소”라는 동물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대와 문화적 가치관에 따라 인간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매번 달라져왔다.


“그는 염소의 다리와 두 개의 뿔을 지닌, 소란을 사랑하는 자로, 춤추는 님프들과 함께 숲 속을 떠도는 자이다.”
— 『호메로스 찬가』 중 ‘판에 대한 찬가’


“아론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 『레위기』 16:21-22


“양(염소)은 순하고 온화하여, 예의의 상징이 된다.”
— 『예기』 곡례편


염소의 절대적인 생물학적 특성은 변하지 않았으나,
시대와 문화가 그들에게 부여한 의미는 달라졌다.
잡식성, 호기심 많은 식성, 암벽을 타는 능력, 강한 생존력
이런 특성은 자유분방함으로, 때로는 이단성과 비순응의 상징으로 읽혀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염소는 자연의 신 ‘판’의 모습으로 신화화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담론 속에서 그들은 죄의 전가 대상이 되었고,
구원받는 ‘양’과는 대조되는 ‘버려진 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염소는 언어유희의 대상이자 인터넷 밈으로 다시 태어났다.

G.O.A.T (Greatest of All Time) — 역대 최고의 인물을 상징할 때,
염소의 이미지는 물론 그 이름 뿐이지만, 다시금 추앙의 대상처럼 등장한다.


그들이 한때는 신이었다가,

죄를 짊어진 희생양이었다가,
지금은 최고의 영광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는 ‘진실’과 ‘선’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증거다.


삼국지 속 유비보다 조조가 현대적 인물상으로 더 부합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과거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 있고, 과거에 비난받던 것이 지금은 칭송받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믿는 진실은, 언제나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진실”은 그 사회에 속한 다수, 혹은 권력 구조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조차,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드러나고 해석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은 종종 그 진실에 설득당하거나, 때로는 너무 쉽게 믿음을 거두어버린다.


이제 곧 대선이다.

우리는 선동되기 쉬운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 데이터의 단편들은 조작되고 왜곡되기 쉽다. 파퓰리즘의 물결이 넘실대는 가운데, 알고리즘은 반향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이것이 다수의 생각이다"라고 믿고, 튀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흐름에 몸을 실어버린다.


정보 과잉의 시대, 과연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안에서 우리는 정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지니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고 싶다.
시대를 관통하는 ‘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묵묵히 그 선을 추구하는 ‘현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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