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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을 강요받는 도마뱀들

자발이라는 이름의 선동

by CAPRICORN

Fact

-도마뱀은 위협을 받을 때 스스로 꼬리를 절단하는 자기 절단 능력을 갖고 있다.

-꼬리는 단백질과 에너지를 저장하는 중요한 신체 기관이다.

-도마뱀 꼬리는 한번 이상 재생 될 수는 있지만 생애 동안 무한히 재생되지는 않는다.


Question

-자발적 선택이라 믿은 것이 사실은 강요된 규범이었다면, 그것은 과연 자율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행위는 희생일까, 순응일까?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개인의 자유와 몸을 내어주고 있는가?




기후변화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지속된 온난화는 비를 말려버렸고, 숲은 모래로 덮였다.

언젠가부터 도마뱀들이 살던 초원은 붉게 메마른 사막으로 변해갔다.

가뭄, 폭염, 식량 고갈. 딛는 땅이 뜨거웠고, 그림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몇 달 전부터였다.

생존이 위협받기 시작하자 도마뱀들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흩어져 살아왔던 그들이 집단을 이루기 시작했다.

‘혼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처음 나왔다.

그리고, 몇몇이 스스로를 ‘지도자’라 불렀다.



그들은 말했다.



“동무들!! 우리의 꼬리는 단백질의 보고(寶庫)입니다!!

한 마리의 꼬리로 네 마리가, 아니 다섯 마리가 이틀을 더 살 수 있어요!!

혼자서 겨우 한 달을 버티는 것보다, 함께 두 달을 살아보자는 겁니다!!

눈앞에서 마른 혀로 죽어가는 동료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이건 희생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공존의 시작입니다!!”


도마뱀들은 선동당했다. 그 말들은 그럴싸했다.

많은 도마뱀들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연단 위에서 ‘얼굴마담’을 자처하던 몇몇 도마뱀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지도자들의 이름은 명단에서 늘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그 사실을, 대부분의 도마뱀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꼬리는 무한대가 아니었다. 선뜻 꼬리를 내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묘한 그들은 선량한 몇을 지목했다.


"당신은 모두를 위하잖아요. 당신은 좋은 도마뱀이잖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도마뱀들.

모든 도마뱀들은 그들을 영웅처럼 추앙했고,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꼬리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른바 ‘꼬리 절단식’은 이틀에 한 번씩 반복되어야 했다.

절단당한, 혹은 스스로 꼬리를 내어준 도마뱀들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고,

그들의 눈빛엔 서서히 피로와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극한의 환경 속에서, 그들의 꼬리가 다시 자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결국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선발된 도마뱀 중 하나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공포가 번졌다.

의문을 가진 몇몇이 목소리를 냈다.


“지도자들의 꼬리는 왜 무사한가?”

"왜 약자들의 꼬리만 희생당하는가?"


그리고 곧, 그들은 쫓겨났다.

지도자는 ‘이기적인 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굴욕적인 대자보가 붙었고, 공동체 밖으로 밀려났다.



"이기적인 불순분자들은 공동체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로 인해 나의 생존이 위협받는 꼴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도마뱀들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은 진정한 ‘설득’이라기보다는, 공포에 의한 복종이었다.

도마뱀들은 스스로 납득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진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지도자들은 미소 지었고, 나머지 도마뱀들은 침묵 속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꼬리를 잘라내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관례’가 되었다.

공포 정치가 시작됐다. 도마뱀들은 목소리 내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너도 우리처럼, 기꺼이."


나는 내 꼬리를 내려다본다.

이 꼬리는 단지 생존의 도구인가?

아니면, 나의 의지 그 자체인가?


나는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선택이,

살아있는 것인지, 살아남는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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