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화가 하늘을 지배할 때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CRM

by 남국의 기장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숙련된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항공사고율이 유난히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왜일까? 단순한 조종사 실수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요인이 CRM(Crew Resource Management)의 핵심 기능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을 기반으로, 왜 한국 문화가 CRM의 실패를 유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국인 조종사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기술이 아니라 '문화'가 추락시킨다.


1997년, 괌에서 착륙하던 대한항공 801편이 추락했다. 날씨는 나빴지만, 기계적 결함은 없었다. 사고 조사 결과,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기장의 판단실수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명확히 지적하지 않았다. 말콤 글래드웰은 책 아웃라이어에서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기장은 실수했고, 부기장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기장을 부정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느끼는 문화에서 왔기 때문이다. "

이는 단지 조종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문화가 비행의 특수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으로 본 한국 조종실 문화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Geert Hofsted는 국가별 문화의 차이를 6가지 지표로 설명했다. 이 중 세 가지 지표는 항공 안전에 특히 유의미하다. 한국은 높은 권력지수, 집단주의, 높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을 보인다.


1. 높은 권력 거리(PDI; Power Distance Index)

한국은 권위와 연령, 직급에 따라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사회다.

항공기 조종실 내에서는 기장이 "절대 권력"으로 인식되며 부기장의 지적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


2. 집단주의(Collectivism)

팀의 조화와 관계유지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갈등을 회피하는 문화가 강하다.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암시적, 간접적 언어가 선호되는데, 이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3. 높은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예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크며, 규칙과 절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절차와 규정을 만들고 조종사의 판단보다 중요시하게 된다. 이는 즉흥적인 상황 판단이나 융통성 있는 대응이 부족할 수 있다.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


Merritt, A는 전 세계 조종사의 권력지수를 측정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전 세계 2위를 차지할 만큼 기장과 부기장의 권력 거리는 높다. 이는 조종실 내에서 기장의 판단에 이견이 있어도 부기장이 이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 우리는 조종실 내에서 직급과 관계없이 평상시에도 명확하게 본인의 의도를 발언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평상시에도 발언권이 없는데 위급상황에 어떻게 발언을 하겠는가.


홉스테드 모형에는 집단주위와 개인주의로만 구분을 하지만 한국인은 관계주의에 더 가깝다. 기장과 부기장의 관계에서 부기장은 조화로운 관계유지가 비행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기장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다. 기장에게 필요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힌트주기, 질문하기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돌려 말한다. 이런 화법이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위험에 크게 노출되지 않지만 시속 700km/h로 가는 비행기의 조종실에서 적절한 화법인가 묻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필요한 의사를 직접적으로 기장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유독 한국 항공사에는 절차가 많다. 항공기 제작사에서 주는 절차에 더해 항공사가 절차를 계속해서 추가한다. 그 이유가 여기 있다. 높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절차와 규정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가능한 상태로 만들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절차와 규정을 벗어난 비정상 상황에서 조종사가 적절히 대응하고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규정과 절차를 최소화하여 평상시 비행에서도 조종사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문화는 훈련될 수 있다


한국의 모든 조종사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CRM교육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이라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CRM교육만으로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바뀌지 않는다. 항공사는 항공 안전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화된 CRM교육을,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교육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또한 우리는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한가를 물어볼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가 특정 목적에 더 ‘적합한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CRM의 핵심은 단순히 위험요소나 실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장과 부기장이 서로의 계급이나 나이에 위축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명확하고 즉각적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문화적 특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


Merritt, A는 그의 논문 「Culture in the Cockpit: Do Hofstede’s Dimensions Replicate?」를 통해, 항공과 같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규제가 엄격한 직종에서도 국가 문화가 직업 문화를 넘어서 조종사의 태도와 행동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그 연구는 전 세계 조종사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CRM 교육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각 국가의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교육 설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결국 우리는 한국인의 정서와 관계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채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고정되거나 변화 불가능한 특성은 아니며, 충분히 교육을 통해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최소한 조종실 내에서만이라도 변화해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CRM 교육은 단순히 기장과 부기장의 소통 훈련이 아니라, 한국 조종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꾸는 문화적 개입이자 심리학의 실천이며, 궁극적으로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종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비행기 사고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문화적 침묵의 결과일 수 있다.

- 말콤 글래드웰





참고문헌

Hofsted, G (2014). 세계의 문화와 조직.

Gladwell, M. (2008). 아웃라이어.

ICAO Human Factor Training Manual, Doc 9683.

Merritt, A. (2000). Culture in the Cockpit: Do Hofstede’s Dimensions Repl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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