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인 파일럿

한국어의 소통 방식을 중심으로

by 남국의 기장



PDI가 높은 문화에서 좋은 조종사가 나오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조종사란 단순히 비행 기술이 뛰어난 조종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최선의 선택으로 승객과 비행기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조종사를 말한다. 기장만도, 부기장만도 아닌, 조종실에 있는 두 사람 모두를 뜻한다.


오랫동안 보잉사의 최고 안전 엔지니어로 일해 온 Earl ween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종석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두 사람이 조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체크해 주거나 서로 역할분담을 할 때 가장 잘 작동하죠. 비행기는 조종 실수를 절대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이 협동해서 비행기를 모는 것이, 한 사람이 비행기를 몰다가 더는 조종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넘겨받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죠.” -아웃라이어 p.213-


기장과 부기장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비행하는 파트너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개념으로 봐서는 안된다. 하지만 한국의 조종실 문화는 여전히 ‘기장이 비행하고 부기장이 보조‘하는 구도가 남아 있다. PF(Pilot Flying)와 PM(Pilot Monitoring)의 개념이 도입됐지만, 권위의 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심리학자 Hofstede는 한국을 ’집단주의’로 분류했지만, 실제로는 ‘관계주의’이다. 즉, 전체 조직에서의 내 위치가 아니라, 내 위치가 상대보다 높은가 낮은가가 더 중요한 일대일 관계적인 수직사회이다. 이런 문화에서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는(부기장이 기장에게) 완곡어법을 쓰고,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며,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말한다. 보통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배려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항공기 운항에는 치명적인 지연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번외로 부기장이 기장이 되면 발톱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Ute Fischer와 Judith Orasanu의 연구에 따르면 권위가 큰 문화에서는 부기장이 기장에게 직접 지시를 하는 대신 힌트주기, 참고사항을 제시하거나 질문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한국어가 청자 중심의 소통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본질을 ‘의도하는 생각과 사실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영어가 한국어보다 그 목적에 충실하다. 언어로서의 영어의 목적은 정확한 기술(Description)이다. 메시지 자체의 내용이 명확하며 사실에 근거한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어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이고 헷갈리는 문법을 가지고 있다. 존댓말도 상대에 따라 몇 단계로 구분된다. 한국어의 본질적 기능은 기술(Description)이 아닌 ‘상호적 반응’에 있기 때문이다. 관계주의적인 한국 문화에 더 잘 들어맞기에 우리 스스로가 발전시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실수들이 큰 위험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항공기에서는 효율성과 목적중심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확하고 효율적인 기술적 언어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관계 자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은 언어의 정확한 기술(Description)보다는 심정(心情)을 중요시한다. 즉,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말의 표면 의미보다 그 뒤의 의도와 감정을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른 진의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의사소통의 특성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 대화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부기장이 힌트를 준 의도가 무엇인지, 참고사항을 지금 왜 제시했는지, 이 질문을 지금 왜 하는지, 그 의도를 말이다. 이런 소통 방식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능력(시간)이 있을 때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시속 700km/h로 날고 있는 조종실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사실을 빠르게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어의 소통 방식은 위기상황에서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지연시킨다.


우리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살아간다. 관계와 감정을 존중하는 문화는 분명 장점이 많지만, 조종실만큼은 권위보다는 안전, 관계보다는 사실 전달이 우선되어야 한다. 문화적 한계를 인식하고 항공의 특수성이 기술(Description)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맞다면, 우리는 어떤 소통방식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참고문헌

아웃라이어(2009), 말콤 글래드웰

어쩌다 한국인(2015), 허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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