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권함.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그 작가의 삶의 총체다.
프롤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적을 말을 한 번 더 적었다. 마치 선언이나 다짐하듯이 말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이 소설가의 눈과 마음을 갖고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말 그대로 정말 쏟아진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책이 되어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은 작가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생각해보면 너무 적은 책이 나오고 있다는 거다.
"왜, 그들의 꿈은, 목표는 책이 되지 못했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글솜씨가 좋지 않아서, 간절하지가 않아서.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그냥, 쓰고 싶어서 썼더니 소설이 됐어요."
이런 말은 극히 일부의 천재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보통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누구에게 읽힐지, 무엇을 전할지까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한 일이 바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라고 말이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작가의 재능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책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소개가 거창한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오래전에 처음 읽으면서, '소설 쓰기 어려우면서도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어려운 이유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렵지 않은 이유는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만 한다면 늦거나 빠를 뿐 분명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 이야기를 해보자.
작가는 모두 15가지를 이야기한다.
그 유용성은 스스로 판단해 보기를.
1. 잘 읽어야 쓴다.
읽어야 쓴다|느리게 읽기
2.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불만과 의혹, 욕망과 의도|절실한 이야기여야 한다
3. 발상에서 소설이 태어난다.
순간의 포착|신호에 반응하라|소설의 자장
4. 낯익은 일상을 낯설게. 현실이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있는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작가의 숨결
5. 소설을 다 써놓고 소설을 써야 한다. 밑그림을 그려라(1)
영감과 우연의 함정|소설의 설계
6.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밑그림을 그려라(2)
치밀하고 구체적으로|질문하고 대답하라
7. 긴장을 배치하라.
플롯의 핵심|구체적으로 쓰라
8. 전략을 세워라. 선택과 배치
취하기와 버리기|적절한 배치
9. 강을 건너는 이야기를 써라.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생략과 건너뛰기의 유혹
10. 육화의 방식. 이야기와 인물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인물은 어떻게 보여지는가
11. 누구에게 말하게 할 것인가. 화자의 문제
누군가에 의해 말해진 이야기|작가를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12. 지하에도 물이 흐른다. 상징과 은유
소설에 비추어진 세계|저 아래층에서 끌어올려라
13. 시간이 만든 소설, 공간이 만든 소설
소설의 시간|소설의 공간
14. 어울리지 않는 장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좋은 문장의 조건
문장, 소설의 시작과 완성|자기만의 문장을 가지라
15. 문학적 체질에 대하여.
문학에도 체질이 있다|스승을 찾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정말 잘 쓴 목차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말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목차에 함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제목을 적듯이 말이다.
이 열다섯 가지가 이 책에 담긴 전부다.
여기에 내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 하고 말을 덧붙이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작가 혹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 천재 혹은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면, 소설의 세계는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천재들, 능력자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분명 훌륭할 것이다. 너무나 훌륭해서 기가 막힐 정도로 난해하고,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환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작가, 소설가가 천재가 아님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의 경우, 그는 미국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 널리 읽히는 인기 작가일 뿐 아니라 많은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서 마치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아침에 작업실에 나가, 저녁에 끝낼 때까지 '일하듯' 소설을 쓴다고 말한다. 그 정도의 경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 성실함과 묵묵함을 통해 이야기를 쌓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안 돼'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도 되는 걸까?
'소설 같은 건 재능 있는 사람이나 쓰는 거야'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 가운데 첫 번째는 '읽기'였다. 덧붙이자면 '느리게 읽기' 말이다.
빨리 읽기는 방대한 지식 가운데서 원하는 지식을 얻기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느리게 읽는 동안 읽고 있는 책의 문체와 흐름의 전개, 장면의 배치와 사건의 발생과 완결까지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거다.
읽을 수 있는 것, 혹은 책이 꼭 글자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풍경, 날씨, 사람들의 삶, 뉴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책이자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 대로 쓰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언급되지만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은 소설이 될 수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소설 속에서는 작가가 본 거의 모든 것이 재해석된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인상을 받는 것과 같은 거다.
일견, 모순된 것처럼 들리지만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가인 것이 아니고,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이다.
묘한 말이다. 이 말은 소설을 쓰는 모든 사람이 소설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치 소설이 목적인 사람들만이 소설가이고, 소설이 목적이 아닌 사람은 그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은 마음가짐의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목적으로 삼고 쓰는 사람들은 모두가 소설가인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애매해서 확신하기 어렵다고 고백해야겠다. 위의 한 문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설 쓰기를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 적힌 단계를 거치는 것만으로도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 몇 편이 될 거야."
그렇다. 그 사람의 인생은 정녕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삶 자체는 소설이 될 수 없다.
써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140~141쪽 실제로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건 소설의 리얼리티와 아무 상관이 없다. 현실 속에서는 몰라도 소설 속에서는 어떤 시시한 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다. 역설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더 소설 같고, 소설이 더 현실 같은 이유이다.
소설은 역설이다.
그러나 쓰지 않으면, 역설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지금의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가자.
살아있으므로,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