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_니나 상코비치

이 책은 내게 이런 의미였다

by 가가책방

좋은 글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내용을 장악하는 제목'이라고 한다.

요컨대,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일지 대략적인 추측과 파악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런 제목은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만 읽었을 때, 이 책은 어떤 책일 것 같은가?

그 감상의 제목으로 삼은 이 글의 제목을 봤을 때,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잠시 생각해보고 읽기를 시작해도 좋겠다.


책을 읽고 남긴 대부분의 글은 전문적이던 비전문적이던 대부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첫째로,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가 있다.

둘째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다'가 있다.

셋째로, '이 책은 좋거나 나쁘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가 있다.

더 있겠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위의 세 가지를 단어로 적어 보면. '정보', '감상', '판단' 등이 담기게 되는 셈이다. 일단 염두에 남겨 두시기를.

앞에 말이 너무 길었다. 이제부터 책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이 책의 제목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혼자 책 읽는 시간>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종종 출간되고는 하는 '서평집'일 거라 생각했다.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담긴 책들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닫게 됐다.

이 책은 서평집 같은 게 아니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되었으며, 그 이야기가 독자의 어떤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지, 운명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이 담겨 있었던 거다.

그렇다. 이 책은 책이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의 삶에 얼마만큼 커다란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증언의 증거 같은 것이다.


책은 펼쳐지고, 읽힌 다음, 덮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부터 읽은 이와 함께 숨을 쉬며,
오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살아있는 이야기다.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 안에 살아있는 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이 탄생하는데, 살아있을 수 있게 한 데에 죽음의 결정적인 기여가 있었다는 거다.

이 책은 저자인 '니나 상코비치'가 큰 언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과 허무함, 고통에서 놓여나 삶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 보냈던 1년의 유예기간 동안의 이야기다. 그 1년 동안 저자는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쓸 것을 목표로 삼고 책을 읽는다.


하루에 한 권 읽기를 도전해 본 적이 있어서 알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해야 하고, 갑작스럽게 사건이 터지기도 하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두꺼운 책을 고르기라도 했다가는 거기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저자 역시 그런 점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면서 한 해 동안 하루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을 '중요한 일'로 규정하고,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한다. 너무 두꺼운 책은 배제하고, 읽지 않은 책들만을 읽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눈다.

이 계획은 예상 밖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모르는 사람들이 메일로 자신이 읽은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했으며, 서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책은 보통의 서평집처럼, 서평이 중심이 된 책이 아니다. 모든 것은 저자의 경험과 생활, 언니와의 추억, 가족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책은 그 이야기에 조금씩 첨가되어 삶을 풍부하게 하고, 경험을 넓혀주는 조미료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보낸 1년이 언니를 잃고 난 후 계속 삶으로부터 도망치던 자신을 삶으로 돌아오게 도와줬다고 말한다.

정말 책을 읽는 것만으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던 걸까?

계획대로라면 저자는 1년 동안 365권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에 10명의 등장인물이 있었다면 모두 3,650명의 삶을 지켜본 셈이 된다. 그들이 경험한 것들, 생각한 것들,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한 일들. 그 모든 과정과 이야기들이 삶을 증거 했다. 삶에는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고, 상실이 있지만 그것으로 삶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던 거다.


단지 책을 읽고,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을 알게 됐다고 해서 책을 읽는 이의 상처가 치유되고, 상실감이 채워졌을 리는 없다. 여기에는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

그 이야기들을 읽는 이의 삶으로 들여보내는 일이다.

이야기가 삶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그 이야기 혹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이 읽는 이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한다는 거다.

아픔, 슬픔, 상실, 고통, 분노, 후회, 갈등, 희망, 절망, 사랑, 이별, 탄생, 죽음.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을 거쳤기에 이야기가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다. 저마다 다른 방법이 있고, 취향이 있고, 목표가 있으니 그 나름대로 읽어나가면 충분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무의미한 것들이 있기에 의미가 없는 것들은 금세 잊히고 만다. 의미가 모든 것인 셈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저자는 가족의 도움과 협조로 무사히 목표를 달성하고, 언니를 잃은 상실에서 벗어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저자는 한 평론가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많은 사람이 현실을 잊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 책으로 파고든다. 저자 역시 한때는 그랬고 말이다. 하지만 하루에 한 권씩 읽는 1년을 보내는 동안 도망치는 도피가 아니라 돌아오는 도피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책 속에는 무수한 삶,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들이 들어 있다.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안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한다. 나 역시 자주 쓰는 말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사용의 빈도는 많이 줄어들었다. 세상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들, 경험들, 행동들. 책은 그 이해하기 어려운 모든 것들에 일종의 주석이 되어준다. 그렇다고 모두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내게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책은 단순하고,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 책은 한 번도 단순한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한 적도 없었다.

적극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 모든 삶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해 부딪히고, 비교해보고, 더해보고 빼봐야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 전체를 처음부터 돌아보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여전히 읽기에 서툴기에 고치고, 배워나가는 중이다.

책의 의미를 더 깊고 다양하게 알아가고, 깨달아가고 싶다.

언제 다시 하루 한 권 읽기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날에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삶을 갈망한다.

더 많은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갈구한다.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을 더 알아가고 싶다.

그래서 읽는다.

그리고 적는다.


내가 책을 읽는 표면적인 이유는 저자와는 다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다.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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