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속, 기적 같은 낯선 이야기
결혼하지 않은 내게,
이만큼 나이 들어 본 적 없는 내게,
삶과 죽음에 마음 쓰지 않아도 자연히 살아가는 내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묻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언제까지고 답이 나오지 않을 이야기이기에.
이 책은 동명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단행본이다.
영화를 본 적이 없어 확신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을 생각이라면 영화를 보는 것을 권하련다.
굳이 책까지 읽어보지 않더라도 충분할 것 같으므로.
오랜만에 책을 읽고 감상을 적기 전에 책 혹은 책 속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글까지 모두 읽었다. 그러다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이 이야기는 삶에 관한 이야기일까, 죽음에 관한 이야기일까?"
그러고 보니, 의문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히 내릴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의 삶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탄생부터 만남, 인연과 죽음까지의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 그리고 모든 삶은 시작됨으로써 완성된다.
사람들은 삶의 완성을 이야기하면서 '목표'와 '달성'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 목표를 어느 수준까지 이루었느냐, 그 목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삶을 완성했느니, 하지 못했느니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보통의 거의 모든 삶을 미완성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모든 삶은 죽음으로 완결에 이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삶을 내던지듯 아무런 노력도, 애씀도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삶은 완성된다. 다만 그 완성된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다.
이 책은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다.
무려 76년이라는 시간을 두 분은 함께 하셨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행복했던 두 분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말을 가져다 써도 부족할 고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평론가와 감독의 대담을 보면 공감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독의 이 말을 본 순간 '정말 그럴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정말 사람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공감했을까?
감독의 말이다.
206쪽
진
결혼 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부부의 결혼 생활은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부부가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감독은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고 했다.
두 분의 삶은 특별한 경우다. 예전에도, 지금도 거의 없을 전무후무한 경우 인지도 모른다.
편협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에는 공감할 수 없다.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그럴 것이다'라고 하는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결국 사람들이 공감한 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거다.
공감하는 부분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정확하게는 공감이 아닌 반성 혹은 동경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보며 그렇게 하지 못함을 반성했을 것이고,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으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더 잦았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두 분의 삶을 동경하게 됐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은 '가설'이다.
솔직히 이렇게 적고는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저 돌아볼 것도 없는 뒤를 돌아보고, 건너다볼 것도 없는 저 앞을 떠올려 볼 뿐이다.
두 분의 삶은 남달랐기에 놀라운 것이고, 어쩌면 기적 같은 것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읽고 와서는 내내 공감하느니 못하느니 평론가의 말이 어떻다, 감독의 말이 저렇다느니 하는 말만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독자이자 관객이므로 두 분의 살아온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막연하고 모호해서 확신할 수 없는 것만 늘어놓고 말았다.
100살을 앞두고도 짓궂은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노여움 없이, 언짢음 없이 받아주는 할머니, 언제나 서로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는 부부.
땅이든 바다든 굴곡이 없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삶 역시 굴곡이 없을 수 없다.
거기에 부부란 두 굴곡진 사람이 만나 함께 하는 것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꼭 맞는 짝이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마치 옛날 동화 속에서나 읽을 수 있던 이야기를 읽고 난 기분이 든다.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나는 이야기 말이다.
감상을 적기 시작했을 때 카페의 스피커에서 최신가요 가운데 한 곡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노래가 우리말인지, 외국말인지, 한국말이라면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흥겨운 멜로디, 운을 맞춘 듯 비슷한 구조의 가사를 들으며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마도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읽는 기분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참, 알 수 없다고 고백하는 수밖에.
사람이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을 깊이 살피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새삼 확신했다.
할머니는 기분이 울적하거나 생각이 하고 싶어 지면 강을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나서도 그러셨다.
127쪽
"물 내려가는 걸 보면 요새는 왜 이렇게 측은한지 몰라요. 강물은 자꾸 내려가잖아요. 올라오질 못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만 해요. 물 내려가는 거 보면 희한해요.(중략) 우리 늙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잘 흘러가는구나. 사람 인생도 물과 같네.(중략) 그렇게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물처럼 살았네."
노자는 상선약수를 말했지만, 선함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물과 같다. 사람도, 인생도 말이다.
물은 탓하지 않는다. 막아서면 돌아가고, 가둬두면 넘친다. 정해진 것 없이 굽이치고, 휘돌며 흘러간다. 사람의 삶을 닮았다.
이 책은 특별히 감동적이지도, 슬프지도, 애틋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을 보는 것처럼 고귀하고 또 아름답다고 느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 말은 찰리 채플린이 해서 생겨난 말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잔잔한 물도, 가까이 들여다보고, 들어가보면 거칠게 굽이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도 그러했을 것이다.
와서 가기까지, 쉼 없이 흐르지 않았나.
잡을 수도 없는 무수한 시간이.
그런데 정말, 할머니는 행복했을까?
사람의 삶이 단 한 번이라는 것이 새삼 아쉬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