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哭聲]_나홍진 감독
방금 영화 곡성을 보고 왔다.
참고로 내 평점은 별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다.
칸에서도 호평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용을 스포일러 할 생각은 없으니, 내용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사람은 이 글을 읽어도 좋을 것이며,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고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는 것이 좋으리라.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일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곡성은 공포영화다'라는 건 그다지 믿을만한 게 못된다는 사실이다. 혹시 무서울까 봐 못 보겠던 사람이 있다면 내 말을 믿고 한 번 보시길.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 사람들의 죽음에는 하나같이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며, 죽은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은 피가 흐르고, 소재조차 귀신과 악마와 죽음이기에 공포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지만, 90년대 '전설의 고향' 수준의 분장과 죽음에 뒤따르는 곡성으로는 도무지 공포를 느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 이런 견해도 있을 수 있겠다.
"심리 공포물은 아닌가?" 하는.
흔히 심리 공포물이라 함은 관객에게 긴장된 분위기와 장면, 전개를 배치함으로써 심리적인 궁지에 몰아넣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느슨하며,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자꾸만 악을 써대는 주연 배우의 모습이 짜증 날 정도로 압박감이 적다. 그렇기에 심리 공포물이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밤도 깊었고, 어차피 영화 이야기라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이 영화의 평점을 매긴 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다. 재밌는 건 한창 영화의 장면이 이어질 때는 두 개나 세 개쯤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는 거다.
그랬던 것이 어떻게 별 다섯 개가 되었느냐?
그 이유는 영화가 끝나던 순간에 터져나온 '뭐야? 끝난 거야?'라는 웅성거림이었다.
그딴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한 번 설명해보라고, 납득시켜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래, 설명해봐'라고 생각한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던진 미끼를 물은 셈이 된다. 한 마디로 낚였다는 거다. 그것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 영화가 흥미롭다고 느낀 이유는 이 자연스러움에 있다.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꿰뚫고 있기에 영화 곳곳에 장치한 미끼와 낚시를 통해 무수한 관객이 낚인 줄도 모르고 낚일 것이라는 확신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관객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낚이게 된다.
"이게 뭐야?" 그룹과 "음,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모르겠는걸"하는 그룹으로.
엊그제 한 친구와 사람의 의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의심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 본인이 의심이 많기에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데서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참 옳은 말이었다.
'곡성'과 의심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물론, 아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돌려 말하지 않겠다.
"미지의 것,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두려움이 사라질까?
의심을 풀어줄 증거가 있으면 된다. 믿을만한 증거가.
모든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으며, 모든 의심에는 까닭이 있다. 그리고 의심 많은 자일 수록 더 많은 증거와 확신을 필요로 하며, 요구하기 마련이다.
가장 확실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다. 자신의 귀로 들은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진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경험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도.
영화가 끝났음을 깨달은 순간,
어떤 결론도 없음에 생각이 닿은 순간,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결말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일종의 배신감과 함께,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기 위해 맹렬하게 매달렸다.
재밌는 건 '아주 잠시 동안' 맹렬했다는 점이다.
함께 보러 온 이가 있는 사람들은 벌써 서로의 결론을 이야기하며, 해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엇이 무엇일 거라느니, 누가 악마라느니,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영화 속의 장면들과 영화 밖의 이 장면이 무척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감독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영화를 끝내버린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견해가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든 옳을 수 있다는 건 무엇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열려있음, 풀어놓음이 오히려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결론으로 치닫도록 현혹하고, 압박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진부하기까지 한 흑과 백의 대비와 성경 구절의 인용을 포함한 무수한 무의미한 것들을 늘어놓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무수하고, 거대한 의미를 완성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확신하는 순간, 감독이 늘어놓은 미끼 가운데 하나를 무는 셈이 되는 거다.
나 역시 이 영화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누가 악마라거나, 누가 귀신이라거나, 그저 화학 작용 혹은 환각에 의한 것이라거나, 몹쓸 아버지의 잘못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낚여주고 싶지는 않다.
이 영화를 두 번이나 세 번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무의미 가운데 조금 더 유력한 무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뿐, 결국 의미까지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와, 이렇게 해서 영화 줄거리를 얘기하는 일 없이 영화 리뷰를 완성했다!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시길.
그때는 이 영화에 내가 어떻게 낚였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을 테니.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믿고 싶은 대로 믿을지니, 의심은 자신의 의심이 옳았음을 확신할 때에야 그치고, 그 확신을 얻기 위해, 무수한 무의미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