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혐오가 만든 무덤.

2016 제7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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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하는 얘기지만 내게 있어 단편을 읽는다는 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자처하는 괴롭힘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기분은 특히 한국 단편을 읽을 때 더 격렬해져서, 어쩐지 죄스러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자꾸만 피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닌 어떤 변덕으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던 한국 문학 읽기는 최근 하나의 모임을 통해 그 모양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2016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정말 오랜만에 내리읽어 버린 단편집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감상은 이 책에 담긴 일곱 편 가운데 한 편에 대한 것에 그칠 것이며, 그 결론은 몹시 씁쓸할 것이 될 예정이다.


일곱 명의 작가 가운데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작가는 정용준과 장강명 두 사람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인터뷰>라는 작품이었다.


<인터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3년 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사진기를 던져 실명에 이르게 만든 일로 인해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지냈던 시간을 끝내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만 같은 장인이 어쩐지 못마땅해하는 것 같아 불편함을 느끼며, 자신의 외도와 무능에도 헌신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아내 역시 가깝게 대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한 호프집에서 만난 부부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의 부당함과 괴로움을 털어놓게 되면서 어쩐지 편안함과 치유받는 느낌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부부 가운데 남편이 빠져나가면서 남은 두 사람의 분위기는 급격히 경직되고 남자의 기분은 다시 나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읽겠지만 대략 이런 줄거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 굳이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느냐고 묻는 이는 없겠지만, 물어도 내놓을 대답은 궁하다. 그저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느낀 불편함이 몹시 불편했기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밖에는 말이다.


생각을 하다 보니 단서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곱 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작가 노트와, 평론가의 해설까지 정독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느낀 것은 씁쓸함이었다.

이 작품은 왜 이렇게 밖에 읽히지 못했을까.

작가도, 평론가도 언급하지 않지만, 뉘앙스조차 비치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남자의 사고에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여성에 대한 혐오였다.

이 남자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느낀 것은 근거 없는 단순하고 모호한 '감'이 아니라, 곳곳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확신'이다.

일단 이 남자는 자신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했고, 함께 할 아내보다 장인의 태도와 견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아내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며, 남편의 외도와 냉담한 태도에도 어떤 견해나 의사를 표시하는 일 없이 비위를 맞추려는 것처럼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이 남자가 상처 입힌 여기자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악수를 하던 순간, 인터뷰 도중과 사진을 찍는 동안 견딜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린다. 그 감정이 결국 히스테리를 불렀고, 기자를 다치게 하기에 이른 것이 3년 전 사건의 전말이었다.

호프집에서 만난 부부의 경우에도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두 사람을 젊게 보다가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갑자기 10년은 나이 든 것처럼 느끼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여자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으며, 쏘아본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과 근거 없는 불신, 돌발적이고 우발적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는 폭력에 '혐오'라는 이름 외에 무엇을 붙일 수 있을까.


2015년 출판계에서 화두가 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페미니즘'이었다. 2015년에 썼을 이 작품을 읽으며 페미니즘을 떠올렸고, 거기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생각을 담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싹텄었다. 그런데 작가는 '모든 초고는 걸레다'라는 작가 노트를 통해 친구의 조언을 듣고 두 번이나 작품 전체를 뒤집듯이 뜯어고친 이야기를 하고, 평론가는 '불신'과 '불확실'에 시선을 집중해 '몰 윤리의 미학'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유별나게 읽었다,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도 인정할 셈이다. 나는 분명 과민하게 반응하게 있으므로. 그러나 업신 여김 당하는 여성과 소극적이었다가 비겁해지는 여성과 적극적이었다가 방어적이 되는 여성의 모습이 차례차례로 그려지는 이 완벽한 비극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될까.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면 억지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 직시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거나 돌려 말하는 것인가. 왜 이것이 그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썼다면 그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모른 척한 것이라면 더 두렵다.


억압이, 보이지 않지만 팽배해 있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작은 것조차,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말이나 글로 만들어 드러내는 것을 막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안 그래."는 오히려 작은 문제다.

"그럴 수도 있지."가 더 무섭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몰랐네."다.


얼마나 더 많은, 잦은, 큰 희생이 있어야 눈을 떠서, 시선을 돌려 문제를 보고, 마주할 것인가 말이다.


그 바라보지 않음이, 그 눈 멈 가운데 끝없이 자라고 이어지는 혐오가 어디까지 커질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그날이 몹시 두려워졌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었다.


극복해야만 하는 것을 극복하지 못한 채 끝난 이야기들을 모아둔 무덤처럼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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