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_양귀자
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은 조세희 작가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처음 읽게 된 순간 이 작품은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될 것이며, 그때마다 느낌도 생각도 달라질 것이고, 점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느 걸 느꼈다.
그와는 다르게 기억에 새겨진 작품이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처음 읽었던 그날까지 살았던 20년 남짓한 삶을 이 작품이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던 거다.
관통,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삶의 마지막이 오기까지 우리가 삶에 대해 정리하거나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안다고 느꼈던 날들에, 그동안의 삶에서 느꼈던 핵심을 꿰뚫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 문학을 폄하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읽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감히 평가하기에는 아는 바도, 느끼는 바도, 깨달은 바도 너무나 일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가,
지금의 한국 문학은 과거보다 나아진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한 없이 유예해야 할 것만 같다. 너무 적게 읽었기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모순》과 같이 오래전에 쓴 작품들을 능가하는 작품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40대 이하의 작가 가운데, 이 작품들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고.
물론 문학 역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독자의 취향과 수준 역시 변하기에 절대 비교가 불가능함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최근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점점 과거의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커져만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모순》은 스물다섯 안진진이 어느 아침 불현듯 내지른 한 마디로 시작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안진진은 자신의 인생에 온 생애를 바치는 자연스러운 일을 새삼스럽게 선언하고 다짐해야 할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술만 취하면 물건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집을 나가기를 반복하더니 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고, 엄마는 어떤 시련이 닥치든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활력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며, 남동생 안진모는 조폭의 보스를 꿈꾸며, 새로운 사랑인 비둘기에게 구애 중이다.
엄마에게는 쌍둥이 이모가 있다. 같은 날, 그러니까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같이 태어나, 4월 1일 만우절에 함께 결혼한 동생이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힘겹고, 비참하며, 찌든 삶과는 달리 이모는 여유롭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산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 격차가, 그 모든 것이 안진진에게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도록 만든 것이다.
안진진에게는 교재 중인 남자가 둘 있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거는 일에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는 결정 또한 포함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모든 순간과 장면들이 결정적으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는 헤어짐을 안기게 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온 생애와 한 가족의 운명과 사랑이 소용돌이치듯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흔하지만 식상하지 않은 우리의 삶과 닮은 이야기다.
모순에 대한 고사는 한 장사꾼이 창과 방패를 팔며 각각을 자랑하며 한 말에 대한 것이다.
방패를 들어 보이며 한 말은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낸다"는 것이었고, 창을 들어 보이며 한 말은 "이 창은 모든 방패를 꿰뚫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구경하던 한 사람이 장사꾼에게 묻는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장사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뜨게 된다.
이것이 모순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날카로운 것과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단단한 것이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 동시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바로 모순인 거다.
제목을 통해 이 이야기를 읽자면 행복하기만 한 삶도, 아름답기만 한 인생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안진진은 몇 가지를 깨닫기에 이른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말이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이해와 받아들임은 별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라고 한다. 그래서 속지 말아야 한다고.
행복과 불행은 명백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역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을 모른 척하라고 하며 자꾸만 속이려고만 한다.
달콤하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며, 이 장밋빛이 우리를 위해서, 영원히 우리 곁에 존재하기라도 할 것처럼 거짓 약속을 남발하는 거다. 그렇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작품은 마지막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에게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실수가 되풀이되는 것은 실패한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 역시 실수에 실수를 거듭한다. 실수가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이 책 역시 고향 집에 두고 왔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한 장의 엽서에 적은 편지였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 지 3년째 되는 날의 기쁨과 서로의 시험으로 바빠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곧 함께 보낼 수 있을 날을 기대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 담긴 짧지만 절절한 엽서. 하지만 그 여자의 손에 있어야 할 이 엽서는《모순》이라는 책 사이에 꽂혀 도서관 서가에 머물고 있었다. 이 엇갈림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모순,
모순은 굳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공기처럼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다가 가끔 숨 가쁠 만큼 달리고 난 후에 공기의 존재가 간절해지는 것처럼, 힘겨운 순간에 깨달아진다.
여유가 있을 때, 기쁨이 넘칠 때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견뎌낼 것을 정말 힘들 때 깨달아지는 건 또 어떤 모순인가.
조금 더 나이 들어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이 들겠지.
아, 이야기하는 것을 잊었는데, 안진진의 이름 '진진'은 참되고 참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이 '안'이기에 참되고 참됨을 영원히 부정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진실되고 참됨을 품은 동시에 그것을 부정하는 모순,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순과 모순의 연속일 수밖에.
'미래는 과거에 있다'는 제목은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