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칼럼
신호등이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는 짧은 순간, 어떤 사람들은 과감하게 액셀을 밟아 신호를 지나려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멈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그만둘 때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만두거나 계속하거나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다. 그런 사람들은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말라고 말한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이란 단어가 없는 것처럼.
많은 것이 그렇지만 세상의 일이란 결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호등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어떤 사람은 머뭇거리며 액셀을 밟아 신호에 늦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망설이며 브레이크를 밟아 애매한 자리에서 멈춰버린다. 일을 시작하거나 그만두는 것에서도 싫지만 꾸역꾸역 계속하거나, 하고 싶지만 자꾸만 다음 혹은 뒤로 미루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망설여지거나 머뭇거리다가 조언을 구하면 열에 일곱이나 여덟은 과감하게 결정하라고, 단호하게 행동하라고 얘기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은 그런 일들로 머뭇거리거나 망설여본 적이 없는 것처럼, 너는 뭘 그런 것까지 고민하느냐고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다.
종종 이렇게 묻는 이들이 있다.
"할까 말까 싶을 때 하는 게 나을까요, 하지 않는 게 나을까요?"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의 경우 내 대답은 '하지 말라'다. 비유하자면 어설프게 액셀을 밟아서 신호 한가운데에 멈춰 설 것 같으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되도록 덜 하는 쪽으로.
이렇게 말하면 꼭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 않으면 더 후회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은 것, 해보지 못한 것에 너무 큰 미련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고 충고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하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하는 이들이다.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련을 품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지 않다고 말이다.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알지 못한다. 실제로 어느 쪽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쓰기를 시작해놓고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도무지 결론이 있기는 한 건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 순간조차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있는 걸 보면 천성 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굳이 그것을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만약 교차로의 모든 운전자가 과감해서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이 없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고를 목격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쩐지 '과감하게'나 '망설임 없이'라는 표현은 나아가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에 달리는 사람은 과감하게 계속 달릴 것이고,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도 과감하게 출발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운전자가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 이 세계에 일어나겠지만, 어쩐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지 않은가.
혹시 모를 과감하게 달려드는 운전자를 대비해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한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게 제일 사고가 많다고 이야기하고 나 역시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 망설임이나 머뭇거림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망설이면서 과감해지려고 하는 그 노력이 더 많은 후회를 부르는 건 아닌지.
한 가지를 새로 시작했다. 제법 오래 망설였고, 머뭇거렸지만 역시 해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망설임과 머뭇거림에 대해 적고, 그 망설임과 머뭇거림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해놓고 "나는 시작했다"고 말하는 게 어쩐지 우습기도 하지만, 세상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망설이고 머뭇거리면서도 나아가고 또 멈춰서는, 매 순간 삶의 교차로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삶이란 그런 게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