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_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얼마 읽지는 않지만 제가 가장 많이 읽는 이야기는 아마도 사랑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보다 더 좋아하는 이야기, 정말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 묻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한 인간 혹은 인류 전체를 해체시킬 듯 잔혹하고 또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그러한 작가의 노력을 부정하거나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비인간적인 면모의 극한에 진정한 인간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소설이라는 가상의 장치가 존재하기에 그 모든 비극이 현실이 되기 전에 들여다볼 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비극적이면 비극적일수록 우리가 느끼는 안도와 안심이 커지는 이유가 바로 아직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파리의 가장 악취가 심한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나면서 시작됩니다. 이 아기는 엄마의 무관심으로 태어나자마자 생선 내장 속에 버려집니다. 아기의 엄마는 아기가 죽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지만 아기는 살아남기 위해 우렁차게 울어대고, 엄마는 사형에 처해지고 아기는 보모에게 맡겨져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아기에게는 기이한 특징 한 가지가 있습니다. 냄새가, 아무런 냄새도 없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체취가 없던 거죠.
이 아기가 바로 이야기 속 살인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입니다. 스물네 명의 소녀를 죽여 악마의 향수를 만들어 내는 광기 어린 갈망의 소유자이자 자신이 되고자 했던 가련한 희생자이기도 했죠.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최상의 향기를 품은 향수와 인간의 가치와 존재를 말살시키는 살인자라는 존재는 공존할 수 있는가?"
『향수』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인간인가?"
이런 물음도 함께요.
양심의 가책이나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궁극의 향수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인을 거듭하는 장 그르누이의 모습은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질이 나쁜 축에 들어갈 정도로 잔혹하고 사악해 보입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이 그려낸 이야기이기에, 안심하고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럽네요.
희생된 이들과 가족들을 보며 '비록 살인자이긴 하지만 비극의 요소를 품고 비참한 존재로 태어났으며, 모든 인간에게 있는 체취가 없다는 건 스스로를 세상에 증명할 수 있는 정체성 혹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기에, 자신의 한계와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했다는 걸 우리는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장 그르누이에게는 냄새가 없는 대신 그 어떤 냄새도 그르누이의 코를 피해가거나 속이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최고의 향기를 만들어 낼 재료가 되는지 그르누이는 머리나 계산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 천재적인 후각으로 알아차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향기, 그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자신에게 향기가 없으며, 다르게 말하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이 그르누이에게 어떤 괴로움을 안겨주었을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어떻게 알아보고, 끌리거나 거부하게 되는가?
장 그르누이에게 인간을 판단하는 척도 혹은 가치란 사람들 고유의 냄새입니다. 최고의 향기를 품은 사람은 가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하죠.
살인자 장 그르누이를 만든 건,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결핍과 최고의 향기를 찾아내고 싶다는 욕망, 이 두 가지가 아닐지.
사실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 소녀들을 꼭 죽여야만 했을까?"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단순히 향을 추출하기 위해서였다면 죽이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 그르누이가 죽인 소녀들에게서 얻고자 했던 건 단순한 향기가 아닌 소녀들의 존재 그 자체였을 겁니다. 존재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 자신에게 없었기에,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했던 것 아닐까요.
"마치 신과 같이."
장 그르누이는 향수를 완성한 후 체포되어 재판을 받지만 자신이 만든 향수를 이용해 모든 이의 사랑과 호감을 얻어낼 수 있게 됨으로써 목숨을 건집니다. 심지어 자기가 죽인 소녀의 아버지에게까지 사랑받죠. 하지만 그르누이는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로 합니다.
최고의 향수를 만들었음에도, 모든 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에도 그르누이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심판이 아닌 선택을요.
인간, 삶, 가치, 추구.
장 그르누이가 선택한 결말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답하죠.
그 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가 '궁극' 혹은 '최고'라고 말하는 것을 얻어낸다고 해도, 본래의 것, 고유의 것이 아니라면 그 가치가 퇴색된다는 겁니다.
장 그르누이는 냄새와 향기를 통해 세상을 보고, 알고, 믿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치란 그 사람이 가진 향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요.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향기만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요.
선한 영혼은 향기롭다고 말합니다. 악한 영혼은 악취가 난다고 하죠. 그렇다면 오히려 장 그르누이가 믿은 향기란 영혼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향기가, 영혼이 더럽혀지기 전에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비록 내게 속하지 않은 향기라고 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오직 하나, 어떤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완성'이었고 완성의 방법을 알고 있다면 갈망의 크기에 따라서는 저 역시 사악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토록 집요한 갈망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이.
『향수』는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읽었음에도 여전히 충격과 전율이 그치지 않았으니 세 번째도 다르지 않겠죠. 그때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지 조금이라도 더 높은, 더 풍부해져서 어렴풋하게나마 '완성'의 경지를 엿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의 마지막이 찾아오기 전에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