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_에밀 아자르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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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인생의 황혼, 죽음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로맹 가리에게 새로운 영광과 함께 은밀한 즐거움을 가져다준 작품이기도 하다. 얄밉고 모진 세상에 크게 한 방 먹여준 통쾌한 복수. 그럼에도 에밀 아자르가 된 로맹 가리는 쓸쓸해 보인다.

인생이 시작보다 끝에 더 가까웠기 때문일까, 이 작품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고픈 희망과 이제는 끝내고 싶은 절망을 함께 보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콩쿠르 상은 한 작가에게 일생에 단 한 번만 허락된다. 여기에 예외가 있었는데 로맹 가리였다. 말년의 로맹 가리는 자신의 쇠퇴와 무능력을 비웃는 세상에 에밀 아자르라는 사람을 보내 자기 작품을 대신 발표하게 했다. 문단은 환호했고, 로맹 가리를 더욱 조롱했으며, 로맹 가리가 젊은 작가 에밀 아자르를 질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로맹 가리는 얼마나 웃었을까?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콩쿠르 상 후보에 올라갔을 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후보에서 내려오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물론 포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에밀 아자르는 콩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로맹 가리 사후에 밝힌 유언을 통해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음이 알려져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번에도 로맹 가리는 얼마나 웃었을까? 물론, 죽은 자가 웃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자기 앞의 생』은 쇠하지 않은 로맹 가리의 필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의 편협함과 뒤틀림을 꼬집는다.


『자기 앞의 생』마지막 문장은 '사랑해야 한다'다. 누구를 향해 한 말인지, 무엇을 사랑해야 한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가만히 던져져,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외침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세 살 정도의 나이부터 나딘 아줌마의 손에 자라기 시작해 이제는 열네 살이 된 소년 모모의 성장기다. 조숙하고, 생각이 많아도 여전히 어린아이기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자주 한다. 정말은 어리기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모모가 이야기하듯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으니까. 오히려 세상은 드넓음에도 편협해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뿐이다.


세상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에밀 아자르였던 로맹 가리는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유난히 아픈 이유는 로맹 가리가 삶을 마무리한 방식이 자살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무수한 사랑을 하고도 여전히 사랑에 목말랐던 한 인간의 모습이 아프고 또 아프게 다가왔던 탓이다.


열네 살인 모모는 세상의 어두움을 잘 안다. 너무 일찍 철든 아이를 보는 일은 어쩐지 대견함보다는 괴로움이 크다.


무엇이 이토록 어린아이에게 세상의 깊고, 아픈 곳에 담긴 진실까지를 알게 했을까.

우리는 그 책임을 감내해야만 한다. 어린아이의 동심은 환상이 아닌 권리다. 지켜줘야만 한다.


『자기 앞의 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이거다.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자기 앞의 생> 중

시간은 세상의 시작부터 혹은 그 전에도 있던 것이라 늙었다고 한다면 정말 '세상 어느 것보다 늙은 것'이란 말이 틀리지 않을 거다. 이런 깨달음이 열 살짜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니.

늙어서 '걸음걸이가 너무 느'린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가게 한다. 나쁜 일이 지나가기를, 이제는 끝나기를,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지나가지 않았음을 알지만 그랬으면 하는 마음.


내가 기다리는 모든 순간이 원하는 때에 오지 않는 이유도 시간이 걸음걸이가 늦은 탓이었을 거다. 앞으로 시간은 더 늙을 테고,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 내가 갈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모모에게는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인 우산이 있다. 모모는 아르튀르를 좋아한다. 아르튀르가 비를 가리거나 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아르튀르가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다.


세상은, 사람들은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는 것만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낭비라고 생각해, 쓸모없는 감정과 함께 내다 버릴지도 모른다. 본래의 모습, 가치 없는 가치로 인해 사랑받을 권리. 우리에게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무엇을 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는 없다. 무엇을 하기에 너무 늙은 나이도 없다.

그 무엇이 사랑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 사랑하자.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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