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죠. 내 문장은 이상합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_유유출판사

by 가가책방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JPG


10년 혹은 20년 이상 하나의 일을 해 온 사람들은 시간만큼이나 깊고도 넓은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가 '전문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한 분야에 쏟아부은 사람들인 거다.


이 책은 '책'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분야인 교정 교열 업무를 20년 이상 해 온 김정선 씨가 전하는 짧고 간결한 문장 쓰기를 위한 조언들을 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조언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과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는 거다. 습관적으로 쓰는 불필요한데다 잘못된 표현들만 줄여도 훨씬 나은 문장이 된다는 게 핵심이다.


엉뚱하지만 책을 읽다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부분을 읽을 때였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고 자판기 커피를 습관처럼 마시느라 수시로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담배도 끊고 인스턴트커피도 끊은 뒤로는 운동 삼아 오르내린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중

여기 적은 문장만으로는 어디에서, 왜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인식과 습관적 사고에서 떠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담배를 피우고 자판기 커피를 습관처럼 마시느라'다. 왜 문제가 됐는지 설명을 해야겠다.


저자의 이름은 '김정선'이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고 여자 이름 같기도 하다. 100쪽 넘게 읽으면서도 작가의 성별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으니까. 다만 중간중간의 에피소드나 문장에 쓰는 표현이 여성적으로 느껴졌기에 여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위에 적은 문장을 읽는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거다.


"어라,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가 보네?"

물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담배를 피우는 건 남자'라고 하는 생각이 여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무너뜨린 계기가 됐다는 거다.


내 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활동하던 '성차별적인 생각의 단서'를 발견했음을 깨달았기에 충격을 받았던 거다. 나름대로 열린 마음으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나는 게으른 낙서가다.

'휘갈긴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만큼 감상이든 무엇을 적을 때 고치거나 다듬는 데 시간을 써 본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였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만 기억해도 문장이 훨씬 매끄러워질 거였다.


문장보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충격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문장 이전에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책 얘기는 않고 엉뚱한 얘기만 하고 말았다.

저자는 책에서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비법을 다루면서 '함인주'라는 저자를 등장시킨다. 처음부터 실재하는 인물 같지 않았다. 주제를 매끄럽게 전달하려고 핵심문제를 제기하는 안내원 , 게임 속 NPC 같은 존재랄까?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어쩐지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느낌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함인주'를 통해 저자는 아마 가장 하고 싶었을 말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의 문장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고 있었다. 오독일지도 모르지만, 저자와 독자의 거리와 시선의 문제라거나 이해와 오해, 자갈길과 비단길을 번갈아 미끄러지는 꿈, 표현은 비명이 아닐까라는 말, 자기만의 문장과 같은 단서들이 저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고 쓰게 된 결과 정확하고, 올바른 문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게 되기 때문에 모두의 문장은 이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아, 위에 쓴 문장이 너무 길어서 솔직히 절단하고 싶지만 실험한 거니까 남겨둬야겠다.


저자가 정말 강조하려던 건 결국 이거였지 싶다.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

저자는 교정 교열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고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쳐 적었고 반려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더 좋은 문장으로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읽고 이해에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아니었을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다음에 읽기 시작한 책 덕분에 재밌는 걸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이다.

"나는 교정이나 교열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될 수 없을 거다."

책을 읽는 동안 처음에는 불평하더라도 어느 순간 이후에 내용에 빠져들기만 한다면, 어떤 식으로 썼든 써놓은 문장에 적응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거다. 고치려고 하지 않고, 적응하려고 하는 사람이 교열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문장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깨달았다는 게 모두 엉뚱해서 웃었다.

기껏 알게 된 게 고정관념과 문장에 적응하는 습관이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갑자기 변하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신경 써서 문장을 쓰기로 했다. 그래야 표지에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고 적은 책을 읽은 보람이 생기지 않겠나.


무슨 조사니, 체언이니, 무슨무슨 형이니 하는 건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친절하게도 여러 번 강조해주신 덕에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솔직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문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도 쬐끔 생겼었지만 후핫)'는 걸 잊지 않고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음이 고맙다.


아, 지금까지 얼마나 편하게 '문장'을 써왔는지 새삼 실감한다. 고작 이만큼 적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나아질 수 있다면, 조금이나 조금 많은 수고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글쓰기, 문장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읽어두면 좋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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