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맛을 찾으러

맛_뮈리엘 바르베리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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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일찍 먹고, 피곤하다고 아른거리는 눈을 달래려고 창 쪽으로 의자를 두고는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여름의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기로 결정했을 때 동남쪽 하늘에는 벌써 둥그스름한 저녁달이 떠 있었다.

파랗던 하늘은 저녁 어스럼에 빛을 내어주고, 파랗다고는 할 수 없고, 회색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애매하고 또 모호하게 굴었다. 그 흐릿함 덕분인지 깜빡 잠이 들었다 깨니, 하늘은 내가 언제 모호하게 굴었냐고 시위라도 하듯 단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계속 자버릴까 하다 주섬주섬 일어나 앉아 이것저것을 하고 끄적거리고 나니 새벽 2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 기분. 어쩐지 득 본 기분이라 밀린 감상을 적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적는 감상들은 어쨌든 득 본 기분으로 가득할 거다.


『맛』이라는 책과 뮈리엘 바르베리라는 작가는 풍문으로나마 들어왔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맛』보다 그 후속작인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먼저 읽었다는 거다. 더 재밌는 건 『맛』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더 재밌게 읽었다는 거다. 거기에 더 재밌는 건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맛』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는 거다.

1편보다 2편이 재밌는 영화가 드문 것처럼, 지금까지 읽었던 대부분의 소설들 역시 앞서 나온 이야기가 더 재밌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재밌는 경우인 거다.


『맛』은 『고슴도치의 우아함』에서 죽는 미식가, 아르텡스가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48시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 오래전 잊어버린 인생 최고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맛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직접 먹어보기도 하면서 그 맛을 다시 떠올리기 위한 거의 모든 시도를 하지만 그 어떤 비싼 요리도, 특이하고 귀한 메뉴도 그가 기억해내고자 하는 최고의 맛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을 넘을까 말까 하던 순간에 그는 떠올린다. 그 최고의 맛을.

그가 최고의 맛이라고 여겼던 그 음식은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싸고 흔한 것이었다.

단지 그 맛이 무엇의 맛이었는지 깨닫는 것으로, 그 맛을 떠올리는 것으로, 그것을 다시 먹지 못했음에도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최고의 맛을 추구하던 사람.

먹는 것에 집착했으나 위장 이상이 아닌 심장 이상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

자신이 지닌 맛에 대한 감각을 거의 조금도 물려받지 않은 자식들을 홀대하고, 학대하다시피 했던 사람.

그랬던 그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떠올린 생각은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문제는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이유를 아는 것이다.
<맛> 중

이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다.


식탁을 점령할 때 나는 군주였다. 그들의 미래를 좌우할 성찬의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왕이요 태양이었다.
<맛> 중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는 것을 두고 '점령'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 이 한 사람을 빼고.

'군주'라거나 '왕'이라거나 '태양'이라는 생각으로 식탁에 군림하는 사람도 없다. 여기 이 한 사람을 빼면.

그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건 첫 문장으로 충분하지만, 그 스스로 자신을 칭하는 표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 비평가'라고 덧붙일 수도 있다. 그는 그냥 군주나 왕이 아니었다.

폭군, 그는 비평계의 폭군이었고, 식탁 위의 폭군이었다. 어떻게 보면 심장이 위장보다 더 견디지 못한 게 당연하다. 그 화가 다 어디로 갔겠는가.


그런 폭군이었던 그가, 죽음의 순간에 집착한 것이 '이유'였다는 건 어쩐지 의외다.


사실 이 이야기는 『고슴도치의 우아함』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다시 읽어보면, 어쩌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질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가 벌여놓은 지옥을 조금도 정리하거나 수습하지 않은 채 만족스럽게 죽어버리기 때문일 거다.


평생 최고의 맛을 찾아다니며, 요리사들을 깔아뭉개거나 칭찬하는 권력에 취해 살았으며, 자신을 닮지 않은 맛을 모르는 자녀들을 없는 것처럼 취급했고, 마지막까지도 자식들보다 조카에게 더 신뢰를 쏟는 모습을 보이다가 '나는 만족했으니 죽는다, 안녕'하는 식으로 가버리는 무책임함이 싫었던 거다.


그런 인간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이유를 아는 것'이라고 하다니. 그의 자녀들, 그에게 비판받은 요리사들에게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준 적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흐음, 아마도 그런 주관적인 생각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절하되었을 것이다. 결국 다음에 다시 읽을 때는 그런 기분을 좀 덜어내고 읽어봐야겠다는 정도에서 타협하기로 한다.


이번 감상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내려고 한다.

그의 삶에서 얻은 교훈을 지금의 세상에 옮겨서 적어보자면 대략 이렇게 되지 않을까.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더 많이 누리는 것,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최고가 되는 것.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면서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다거나,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니까라거나, 세상이 그러니까라며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유는 나중에, 안정을 찾으면 그때 따져보면 된다면서.


거의 모든 마지막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라 그 이유를 찾기는커녕, 중요한 것이 이유라는 것에도 닿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그러하니, 늘 이유를,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기를 권한다.


어떤 이유냐, 무엇에 대한 이유냐고 물을 생각인가?

그건 스스로에게 묻기를.

나 역시, 묻고 있는 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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