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화 감정에 약합니다.

이 남자가 연애를 못하는 서른네 가지 이유

by 가가책방

어쩔 거니, 이 남자의 쿠크다스 감성.


남자는 종종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 눈물 흘리곤 했다. 그 부분이나 장면이 슬퍼서 눈물이 난 건 아니었다. 다만 등장인물의 감정에 몹시도 이입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던 거다. 간단히 말하면 남자는 감정 문제에 보통은 약했고, 때로는 몹시도 약했다. 그러나 항상 약한 것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남자는 장례식에서만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의 죽음도 할머니의 죽음도, 가까운 친척의 죽음도 남자를 눈물 흘리게 하지 못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도 남자의 감정은 요동치지 않았다.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과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알게 될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예감했다.

조금 전까지 살아서 숨 쉬고, 손을 붙잡고, 말을 건네던 사람이 숨을 거뒀다. 죽음 직후에 일순간의 침묵이 찾아든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그 순간이 몹시도 고요하게 느껴졌기에 남자는 그 공간 안의 사람들 모두가 숨이라도 멈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침묵 뒤에 흐느낌이 침묵을 찢듯 흘러나왔고 곧 터지듯 통곡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눈물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빼앗긴 사람의 슬픔과 빼앗아간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그 눈물과 함께 흘러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부터 죽음이 찾아들던 순간, 이윽고 죽음이 현실이 되던 순간에 남자는 그 어느 순간보다 또렷하게 삶을 실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는 걸 느꼈다, 죽음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어야 했다. 남자 역시 사람은 모순된 존재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죽음이 삶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깨달음은 남자를 기쁘게 하기보다 한동안 깊이 침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슬픔으로 비쳤을 것이란 걸 알았다. 웃기지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그 후로도 죽음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의미에 관해서는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왜 장례식장에서 그토록 다툼이 자주 일어날까 궁금했었다. 죽음이 슬픔이기만 하다면, 상실이기만 하다면 애도하는데 너무 많은 기운을 써버려서 싸울 힘 같은 건 없을 텐데 하며 기이하게 여겼다. 그러나 죽음이 삶을 깨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감정이야말로 삶의 커다란 원동력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죽음은 삶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자기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만들었다. 어떤 의미로는 죽음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죽음을 이렇게 생각했다.

‘반드시 찾아올 것이기는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한 가지, 남자는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됐다. 죽음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인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었지만, 감정에 약한 자신이 왜 유독 죽음 앞에서는 담담해질 수 있었는지는 알게 되었던 거다.

남자는 감정에 약했다. 감정에 약했기에 두려워했다. 감정은 언제나 평온한 자신을 휘두르는 것이라는 생각에 늘 조심하고 경계했다. 연애 감정이란 때로는 재앙에 가까운 두려움이 되기도 했다. 그 감정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 특별함이란 사실상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인 다른 사람의 감정과 맞닿는다는 것, ‘교감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밀당’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밀고 당기는 일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다. 세상에는 거짓말쟁이가 너무나 많았다. 그것은 시험이고 계산인 동시에 교감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늘 생각했고, 언제나 생각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이 물음은 헤어날 수 없는 늪 같은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결국 스스로를 집어 삼키게 될 함정이었다. 남자는 이 물음까지도 감정적으로 접근했다. 그러면서 이성적으로 사고했다.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들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잘못된 길로 들어선 셈이다. 자신이 늪에 빠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기는커녕 발버둥을 친다는 건 격렬한 포기의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남자는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인 셈이다.

‘좋아함, 연애, 사랑.’

남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감정의 커다란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나아가는 걸 그만두는 게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알고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포기의 이유였다.

이 포기의 이유는 시시하지만 남자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종종당하는 일이었다.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거절과 거부와 종종 맞닥뜨리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우연히 알게 되어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 번쯤 밥을 먹기도 한다. 그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우연히 만나기도한다. 그러다 갑자기 연락이 끊긴다. 안부를 묻는 단순한 인사에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뭔가 잘못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봐도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만은 남자도 알고 있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남자는 생각을 그만둔다.

무엇인가 반복된다면 그건 분명 자신의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남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태도를 짚어주고 가르쳐줄 만큼 인내심 있게 남자를 관찰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알고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포기의 이유 2였다.

남자는 효율이 좋지 않은 보일러 같은 사람이었다. 특이 이 나쁜 효율은 감정 문제에서 유독 두드러져서 조금만 태워도 홀랑 타 버려서 남아나지를 않았다. 감정과 체력은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아서 감정을 소모해버리면 다른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리기로 한 거다. ‘이것’은 생각이고 ‘저것’은 감정이었다.

남자는 감정적인 것과 감정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했다. 감정적인 것은 남자에게서 너무 많은 기운을 빼앗아 갔기에 구분해서 경계해야만 했다. 남자는 감정에 약했기에 어린아이가 하듯 두려워했다. 감정이 정말 두려운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감정은 결국 무수한 오해를 낳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남자 역시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오해를 받아도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착각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이란 바로 보기 무척 어려운 것이었기에 종종 착각에 빠지곤 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를 착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많은 것이 감정의 문제였다. 그러나 남자는 감정에 약했다. 몹시도 취약했다. 그래서 남자는 연애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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