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나'의 자기고백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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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은 자기고백적이다.

"아니야.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어!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니라고!!"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 우겨보려고 한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허황되거나 상상 속 세계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도 결국 작가라는 뿌리를 벗어날 수 없기에 모든 이야기는 자기고백적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이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화자가 '나'로 된 이야기를 모아둔 단편집이다. 김연수 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역사적인 사실을 근저에 깔고 이야기를 진행해가는 방식은 어떤 이야기는 이해를 돕고, 어떤 이야기는 도무지 요령부득인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야기는 읽다 보면 이게 뭐야, 이게 뭐야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허허, 마치 길을 가던 중에 만난 낯선 이가 자기 사정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걸 듣다가 올 때처럼 느닷없이 가버렸을 때의 허탈함을 닮았달까.


왜 그랬는지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면 결론까지 잊어버렸으면 좋을 텐데,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결론은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더 모호한 그런 상태가 되는 거다.

예를 들자면 '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차였어.'같은 식의 고백 말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차라리 내려놓는 게 나을 때가 있는 법이라, 이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만난다면 그렇게 넘어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을 빼면, 지금까지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많이 읽었는가 하면 장편을 세 편 정도 읽었고, 에세이 하나를 읽은 정도지만 말이다.


작가적인 상상력의 좋은 예랄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장인이, 그 가진 바를 적절히 활용해 완성품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다.

소재도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기술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알 때에 비로소 이야기는 완성의 가능성을 품는 것 아닐까.


제목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지만 이 책에 담긴 어떤 이야기도 '고스트 라이터', 대필 작가의 것은 아니다.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을, 다만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빌어 적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흉내라도 내보고 싶지만, 역시 이런 방식으로 뭔가를 쓸 수 있게 될 것 같지는 않아 그만두기로 한다.

편집광적이고 백과사전적인 배경지식이 없이는 탄생할 수 없는, 뿌리 깊은 글쓰기는 어쩐지 태생이 유목민인 내게는 난해하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김연수라는 작가의 한계는 어디일까?

이미 한계를 느끼고 있을까?

이 책이 2005년에 출간되었으니 이후 11년.

최근에 출간된 단편집이 있는지 찾아뒀다가 있으면, 그것부터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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