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진실의 묘약

『이해의 얼굴들』

by 가가책방

"신세계였다."

선비(先非) 씨는 대학 생활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함축했다.

'신세계(新世界)'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한 설레는 세계라고 말이다.

탐험의 시작은 수동적이고 타협적이었다.

선배들이 부르면 모였고, 선배들이 이끌면 따라갔다.

선비(先非) 씨는 콜럼버스처럼 난폭하고 무자비하게 새로움을 탐했다.

모든 모임에 선비(先非) 씨가 있었고, 모든 자리에 선비(先非) 씨가 앉았다.

선비(先非) 씨는 술에 취했고, 새로움에 취했다.

취하기 위해 취했고, 취했기에 깨어나지 못하는 날이 반복됐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선비(先非) 씨에게 길고도 짧았던 몇 달은 신데렐라의 무도회였다.

이 세계에는 영원히 계속되는 연회도, 끝나지 않는 축제도 없다.

선비(先非) 씨는 다시 현실로 내동댕이 쳐지듯 돌아오게 될 거였다.

"그것은 낡은 신세계였다."

선비(先非) 씨 '신세계'라는 말에 몇 자를 보태는 것으로 대학 생활의 인상을 고쳐 말했다.

"새롭다고 믿고 빠져있는 동안에는 익숙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이외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는 거지요."

"아, 이 멋진 신세계가 허구로 된 허상이고, 환상 속의 허구구나 하고요."

선비(先非) 씨는 환상의 신세계에서 한 가지를 몹시도 탐했다고 했다.

"환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묘약이 필요한 법이지요."

'묘약'

사람들은 자신에게 금지된 것들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곤 한다.

무한한 낭만과 매력, 칭송과 예찬, 실수와 후회조차 추억이 되는 세계.

선비(先非) 씨가 묘약이라 믿었으며, 신세계의 주인공이라 여겼던 마법의 이름은 '술'이었다.

선비(先非) 씨는 매일 지겹도록 취해 다녔다.

무엇에 취했는가?

"한 번은 꼭 생각해봐야 합니다."

선비(先非) 씨는 취하는 이유와 정체를 모르고 취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을 과학적으로 보면 그 과정은 지극히 단순하다.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이 사람의 감각을 둔화시키거나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로 취한 상태다.

술의 본질은 취하는 것에 있다.

취하는 것의 본질은 알코올에 있지 않다.

알코올은 무색 무미의 기화성 액체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마법도 없다.

알코올의 작용이 끝나면 취기가 가심과 동시에 취한 상태도 끝이 난다.

어떤 연속성도 습관성도 없는 끝인 거다.

"취하는 것의 본질은 감각에 있는 것 이외다. 논리나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다는 거지요."

술을 두고 논리나 이성을 이야기한다는 게 어쩐지 선비(先非) 씨답다.


술을 마시면 취한다.

선비(先非) 씨는 술을 마셨다.

선비(先非) 씨는 취한다.

논리는 술에 취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감각, 감정은 정의되지 않기 때문 이외다."

선비(先非) 씨는 자기의 일이지만 그 날들에 왜 그리 취해야 했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때, 그날의 감각으로 돌아갈 수도, 기억해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마시고 다니신 거예요?"

선비(先非) 씨는 대답하기 전에 '웃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약속했지만, 선비(先非) 씨의 대답을 듣고 나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을 철썩 같이 믿었으니..."

선비(先非) 씨를 알게 된 후 처음으로 말을 맺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취중진담을 믿었다는 말보다, 그 말을 믿었던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선비(先非) 씨의 모습을 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습고, 우습(雨濕)웠다.

선비(先非) 씨 술을 좋아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술이 달다느니, 맛있다는 말을 믿을 수도 없다고 했다.

선비(先非) 씨가 빠졌던 건 술이 지닌 적당한 무책임함과 경솔함이었다.

억압하지 않아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이었다.

'자유'

술은 무책임의 자유가 허용되는 최초이자 최후의 발명품이었다.

술을 마시면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었고, 술을 마시면 고백을 할 수도 있었다.

취중진담이었다.

취한 사람은 진실을, 진심을 말한다는 믿음.

부족한 용기를 몇 밀리 리터의 알코올로 채워 마음 밖으로 끌어내는 마법.

신데렐라의 마법이 자정이 되면 깨어지는 것처럼 선비(先非) 씨의 마법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취해버린 선비(先非) 씨는 결국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다음 날 간신히 학교에 나간 선비(先非) 씨는 전날 술자리를 함께 했던 이들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질감, 경계와 경멸, 의도적인 무시와 외면.

그날 선비(先非) 씨는 선배의 멱살을 잡았다고 했다.

코 앞에서 담배 연기를 뱉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고 했다.

개념이 없다고, 예의가 없다고 훈계했다고 했다.

마침내는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처럼 노려봤다고 했다.

선비(先非) 씨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비(先非) 씨는 한동안 자기혐오에 취해 살았다.

취중진담은 결국 약자의 비겁한 변명이었다.

거짓의 용기임을 깨닫고 말았다.

진담?

무책임한 진담은 질 나쁜 농담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어떤 진심은 전해지지 않는 게, 드러나지 않는 게 나았다.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건, 보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놀라운 건, 술에 취하는 것만큼이나 자기혐오에 취하는 게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취중진담과 자기혐오.

둘은 닮아 있었다.

진실이지만 거짓이며,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길 바라고,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기를 바라는 허무의 주연들.

책임질 수 없는, 책임지지 않는 진심은 진심이 될 수 없다.

진심은 있어도 그 진심을 말하는 주인공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현상은 있지만 원인은 없는 것, 취중진담은 도깨비 같은 것이었다.

기억의 공백은 책임지고 싶은 순간에도 책임질 수 없게 만들었다.

무책임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기혐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드러냈다는 자아비판.

취하도록 마시는 술의 진정한 부작용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취중진담은 결국 약자의 비겁한 변명이었다.

거짓의 용기임을 깨닫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선비(先非) 씨는 취하도록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선비(先非) 씨는 진실의 묘약을 포기했다.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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