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꼬리를 좇는 건 그만두기로 하자.

게일 포먼 『네가 있어준다면』 읽고

by 가가책방
네가 있어준다면.JPG


가장 지독한 불행이나 기적처럼 기쁜 일이 일어나는 날조차, 다른 평범한 날의 아침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이나 불행의 낌세는 언제나 나중에 추가된 해석일 뿐이라는 거다.

『네가 있어준다면』 역시 보통의 아침으로 시작된다. 다면 평소와 달랐던 건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그 도시에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는 거다.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좀처럼 일어나는 일이 아닌 '눈이 내린 일'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모양이다.

『네가 있어준다면』의 주인공인 열일곱 여자 아이는 '모두들 눈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니까.


이미 불행한 일이 일어난 후에,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 불행의 원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걸까?

그 원인을 알아도 되돌아가거나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 슬프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네가 있어준다면』을 읽고서는 기껏 생각한다는 게 '불행의 원인'에 대한 것이라는 데에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느낀다.


불행 얘기를 하기 전에 책 속 이야기를 조금 하기로 하자.

여기 정말 화목한 가정이 있다.

아빠, 엄마, 남동생, 나. 그 날 아침,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은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고, 열일곱 소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기적 같은 일이지만, 소녀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 혼란, 슬픔을 감당하는 데 온 힘을 써도 모자랐기에, 자기만의 힘으로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도 벅찼기에, 자꾸만 포기하게 되는 거였다.

소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 아빠의 친구, 할머니와 할아버지, 정말 친한 친구, 남자 친구.

때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혼수상태에서도 다 듣고 본다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네가 있어준다면』기쁨에서 절망, 슬픔에서 희망으로 옮겨 가는 소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다.


일상과 삶을 돌아보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들이 더 많이 기억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쁜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의 삶에게는 부당한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순간 그 이전의 평범하고, 어쩌면 조금은 불행하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하나다.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넘어서기 위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탓하고,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지만, 불행을 이기기 위해 우리에게 행복이었던 것에 책임을 돌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불행이 되지 않을까.

『네가 있어준다면』은 감동 스토리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한두 번 훌쩍거릴 수 있겠지만 펑펑 울게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기에 불행의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원인 자체가 아니라 원인을 묻고, 밝히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원인을 묻고 밝혀냈을 때, 무엇을 하기 위해 묻고 밝혀낸 것이고, 그 과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의 결론은 조금 허무하다고 느낄 수 있겠는데,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어났을 때에만 불행을 탓하는 건 부당하다는 거다.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는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면서, 불행이 일어나서 그 행복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했다고 원망하다니, 불행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적당한 불행은 행복에 도움이 된다. 이 '적당한'이 얼마만큼인지 알지 못하지만, 불행의 원인을 밝히는 일보다, 책임을 묻는 일보다 행복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쪽이 일상에나 우리 마음에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불행의 꼬리를 좇지 말자, 행복이 멀어지니까.

불행이 나의 꼬리를 좇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좀처럼 꿈을 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