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프리모 레비 『고통에 반대하며』 읽고.

by 가가책방
고통에 반대하며.JPG

나와 무관한 풍경, 흔적을 마주하고도 너무 슬프고 아파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아프다고 느끼고, 슬프다고 여기며, 분해하고 괴로워하는 게 자연스럽고 또 왜 그런 마음이 되는지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도 풀어낼 수도 없는 그런 고통도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소녀상'같은 것 말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가장 커다란 고통은 나에게 닥쳐온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 아닌 타인, 그 타인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고통은 나를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요.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말이죠.

다행히 큰 사고나 수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됐기에 제가 기억하는 가장 커다란 고통은 상한 이 때문에 겪었던 치통이었습니다. 진통제를 잔뜩 먹었어도 가라앉지 않는 치통과 싸웠던 사흘의 기억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이를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그러면 그 고통은 멈추고 속이라도 후련할 것 같은 충동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만 그때의 치통과의 투쟁이 제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고통과의 투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정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고민이나 고통, 괴로움도 나의 것은 되지 못했습니다. 될 수도 없었고, 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죠.

차라리 내가 그 고통을 겪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은 틀림없는 진심이었습니다. 조금의 거짓도 없었어요. 하지만 진심인 동시에 자기기만이기도 했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저는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고통이 내게 옮겨오지 못한다는 걸요.


그 사실, 고통이 내게 옮겨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순수한 진심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저를 괴롭히고 시달리게 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바라는 나와, 아는 나와, 원하지 않는 나.

모두가 내 안에 있는 진심이었고, 소망이었으며, 욕망이었고 바람이었습니다.

무력하고 또 무기력한 나를 받아들이기란 간단하지 않았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엄밀히는 타인이기에 결국 그의 아픔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한쪽은 계속 고통에 시달려야 하고, 다른 한쪽은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곁을 지켜야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죠. 설사 내가 그의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는 없기에 결과적으로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 느낄 수 없는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고통은 커지죠. 나중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호의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신이 영원히 돌려줄 수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증오하게 된다."는.

고통을 겪는 당사자나, 그 곁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증오만 남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고통을 이해하고 이겨내려고 한다면 말이죠.

불행하게도 고통에는 끝이 없습니다. 삶이 곧 고통이고 괴로움이다라는 말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시달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끝이 보이나요?


『고통에 반대하며』의 저자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태인입니다. 무려 10개월이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기적의 생존자인 거죠.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았고 수용소의 고통은 끝났지만 그의 삶에서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써서 책으로 남기고, 사람들에게 그 시대와 역사를 증언하고 다닌 사람, 그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가 택한 최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는 것만 봐도 고통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거죠.


프리모 레비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에 대해 한참 생각했습니다. 수십 년이나 잘 견디고 살아온 유머 감각을 갖춘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가 자신의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부채감일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프리모 레비가 그 역사가, 세계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기를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더군요.

그때 이 책의 제목인 『고통에 반대하며』는 하나의 가능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 끝내는 방법은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 아닐까 하는 가능성이요.


사람들은 '극복'하라고 말하고, 책은 고통을 극복하는 무수한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극복한다는 건 그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다음의 일입니다. 만약 그 고통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생, 언제까지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은 프리모 레비에게서 아우슈비츠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뺀 일상적인 경험과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을 시간을 제외한 일상적인 시간, 풍경, 경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 인정할 수 없는 괴로움들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고통들과 괴로움들은 여전히 들어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통에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에요.


조용하고 고요하지만 가장 격렬하게 고통에 반대하는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흔적을 짚어가는 일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았기에, 페이지가 천천히 넘어갔던, 그런 책이었습니다.


당신은 인정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에 단호한 반대를 내보일 수 있나요?

이렇게 휘갈긴 충동적인 감상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정리된 생각을 적어보고 싶지만 게으른 저는 그만 쓰기를 그만두기로 합니다. 어쩐지 삶에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들 때마다 떠오를 것 같은 말이에요.


'고통에 반대하며'

이 말의 무게가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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