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노력이 최선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읽고.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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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불과 6년 전까지도 나는 자기계발서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서를 선물하기도 하고 추천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는데, 자기계발서는 '매력적'이라기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효과'에는 전제가 따른다.

어떤 식으로든 '실천'해야 한다는 거다.

처음의 생각인 '매력'에는 실천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게 그때를 돌아보는 지금의 판단이다.


자기계발서의 매력은 마치 티브이나 영화 속 이야기 주인공들의 삶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며 부러워 하는 것과 닮아있다.

또 한 가지, 내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은, 찾아오지 않을 환상적인 이야기가 '너무 쉽고 간단히' 이루어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에이, 이건 나도 하겠다.", "누가 그걸 몰라?",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말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심리의 가장 큰 덩어리는 합리화와 자기부정, 질투와 부러움이다.

너무 간단히 성공적인 삶을 자신의 것으로 한 저자의 이야기가 부러우면서도 질투가 나고,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꾸 찾아 합리화 하려고 하다가 결국 자기부정으로 귀결된다는 거다.

이런 태도의 독자에게 자기계발서는 독이다. 아주 달콤하고, 중독성이 강한 동시에 치명적인 그런 독 말이다.


처음에는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가 소설인줄 알았다. 하지만 실화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소설처럼 극적이라서.

어떤 유명한 분이 하신 말씀이 "소설은 현실에서 우연을 조금 뺀 것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실제 삶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는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 이 책이 딱 그런 경우다.


파견직, 비만,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생계를 위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스물아홉 하야마 아마리는 스물아홉 생일날 하나의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이 이 책의 제목인 '1년 후 죽기'다. 딱 1년만 전력으로 살아보고, 후회 없이 서른 살 생일에 죽겠다는 게 목표가 된 거다.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 년을 살겠다는 결심이 조금 이상해 보이지만, 이 결심은 기적같은 결과를 낳는다.

일 년 만에 삶이 완전히 달라진 거다.

그래서, 하야마 아마리가 1년 후에 죽느냐?

그건,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테니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한다.


'아마리(あまり)'는 나머지, 여분 등을 뜻하는 단어다. 하야마 아마리가 자기의 이름을 '아마리'로 삼은 이유는, 자신이 이미 스물아홉 생일에 죽은 것이나 다름 없기에 서른 살 생일까지의 일 년이라는 시간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없었을 삶을 살아가니까, 후회 없이, 최선을 대해, 살아보겠다는 결심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아마리는 그 결심과 함께 1년 동안 온갖 것에 도전한다. 1년 후에 죽을 것이기에 부끄러움이나 후회 같은 것도 망설임이나 머뭇거림도 없다. 다만 '최선'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런 노력에 찾아오는 변화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노력을 우리는 최선이라 불러야 한다.


읽으면서 '일본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웃기는 생각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오직 자기 삶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란 지금의 세상과 얼마나 다를까.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자기계발서처럼 읽힌다. 물론 자기계발서로 읽어도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할 수 있겠다'거나, '생각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사정이 안 된다'는 식으로 발뺌을 할 거라면 읽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간 낭비다. 그만 두는 게 낫다고 말이다.


자기계발서 읽기를 거의 그만둔 이유는 대부분이 '이미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간절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1년 후 달라지겠다가 아니라 '죽겠다'는 결심.

흔한 결심은 아니다. 내게는 1년 후, 그때 죽더라도 후회가 없을만큼의 삶을 산다는 게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삶을 '실제로' 살아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제의 삶이지, 타인의 삶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조금 더 애써보자. 다만 그 애씀이 세상의 척도와 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함도 잊지 말고 말이다.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하듯, 세상이 바라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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