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발표의 날_예언자 하루키가 웃는 밤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by 가가책방
세계의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JPG

2016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습니다.

수상자는 정말, 의외의 인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였지요.

'밥 딜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입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전설이라고도 불리는 분이니 이 시대의 음유시인으로 노벨 문학상의 수상 자격이 충분한 분이셨다고 봅니다. 의외였고, 상상도 못했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번 수상을 두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수상을 기대하던 유력한 후보자들이 몹시 허탈할 거라거나, 화가 날 수도 있겠다고요. 실제로도 화를 내거나 허탈함에 기운이 쏙 빠진 작가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았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들 가운데 속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확신입니다. 하루키가 대인배라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물론 아니죠. 저는 하루키가 소인배인지 대인배인지 알지 못하니까요.


그럼, 그렇게 생각할만한 증거 혹은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오늘 감상을 쓰려고 하는 이 책이 바로 그 증거이자 근거입니다.

오늘 밤 하루키는 밥 딜런의 Shelter from the Storm을 들으며 웃고 있을 겁니다. 가만히 눈감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 소설을 제법 읽어왔다고 생각한 제게 한 방을 먹인 작품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지 않고는 하루키를 논하지 말라고 한 소리를 들었죠.

분이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지요. 첫인상은 솔직히 '으응?'하는 뜨뜻미지근한 거였습니다. 『해변의 카프나』나 『태엽 감는 새』보다 덜 흥미롭다고 느꼈죠.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 갖는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그림자'의 관계, '현실'과 '세계의 끝'의 관계가 하루키 작품의 아주 기본적인 세계관이자 관계의 씨앗일 거라는 게 느껴진 거죠.


이야기는 시대가 불명확한 현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아주 영향력이 큰 세 개의 세력이 있는데, 하나는 '기호사'라는 세력이고, 또 하나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인 '야미쿠로'의 무리이며, 마지막 하나는 '계산사'의 조직입니다. 기호사의 세력은 '공장'이라 불리고, 계산사는 '조직'이라 부르고 야미쿠로는 '야미쿠로'입니다. 야미쿠로는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존재들로 같은 야미쿠로끼리도 사이가 좋다거나 조직을 만드는 일이 없기에 '무리'라고는 할 수 있지만 사실 '세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하세계와 어둠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죠. 그래서 세력이라고 적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세 세력은 서로 연합하거나 하는 일 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현실은 위태로운 상황이기에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주인공은 계산사 중에서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를 한 박사가 비밀리에 고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박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뼈에서 소리를 뽑아내는 기술'을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개발해 낸 천재죠. '소리 뽑기'라고 하는 기술뿐 아니라 박사는 많은 것을 연구했고, 어쩌면 세계를 끝장내게 될지도 모를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암호화하기 위해 뛰어난 계산사인 '나'를 고용하게 된 거죠.

박사는 '나'에게 그의 '세뇌'기술과 '샤프링'이 아니면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나'가 '샤프링'을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세계가 끝장날 위기가 시작됩니다. '나'의 세계가 끝장나는 위기 가요.


세뇌란 계산사가 아니면 해석할 수 없게 암호화시키는 일입니다. 뇌의 작동 방식을 변경하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과정이죠. 샤프링은 더 까다로워서 특수한 암호가 열쇠가 되어 작동하고, 이 과정은 샤프링을 실행하는 '나'조차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이번에야 말로 정말 세상의 누구도 풀 수 없는 완벽한 암호화가 완성되는 거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나'의 자아가 세 가지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하나는 현실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끝이라는 공간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 이가 된 '나'이며, 마지막은 세계의 끝의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그림자'입니다. 셋은 본래 하나였지만 분리되어 버리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이 분열된 세 자아를 하나로 돌리기 위한 모험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모험의 결말이 어떤지는 얘기해 드릴 수가 없군요.


밥 딜런의 이야기를 꺼낸 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하루키가 계속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밥 딜런이기 때문입니다. 밥 딜런의 노래 여러 곡을 등장시키는데, 하루키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죠. 음악을 집어넣는 것.

클래식이나 재즈를 넣기도 하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도 클래식이 들어가 있지만 다른 것보다 더 시선을 끌었던 건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과 <폭풍우>로 번역되어 있는, 추측컨대 Shelter from the Storm이었습니다.

왜냐고 물으셔도 사실 대답이 궁합니다. 그냥 신경 쓰였던 것뿐이니까요.

그랬던 느낌이 아직 가시기 전에, 하루키를 제치고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거죠!

와우!


하루키는 밥 딜런을 즐겨 들었을 거고,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겠죠. 그런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과연 허탈함에 빠지거나 화를 내거나 할까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럴 리 없다고 믿는 거죠. 그래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마지막을 재연하듯 가만히 눈을 감고 Shelter from the Stom을 들을 거라고 상상해 본 겁니다.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낀 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습니다. 자아의 분열과 세계관은 그나마 익숙했는데, 마치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자기 고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거죠.

한두 번쯤 더 읽으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초초하다거나 급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뭔가 시원하지 않다는 느낌이 다 읽은 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뚜렷이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나마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시작으로 하루키가 목표로 정한 것을 '이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떤 시점에서부터 인가 내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일그러뜨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뒤틀린 인생을 남겨 두고 소멸해 버리고 싶지 않다. 내게는 내 뒤틀린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나의 삶을 그대로 남겨 두고 홀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中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는 말은 어쩐지 비장하기까지 하다. '각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하루키 자신이 작품을 통해 그려갈 세계를 완성시키고 말겠다는. 그런.

이 과정은 외롭고, 쓸쓸하고, 자주 그리고 몹시 슬픈 것일 거다. 그것을 알기에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이렇게 말했던 거겠죠.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언어로 바꾸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전할 수 없어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나의 마음을 닫아 갔다. 깊디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中

과거, 하루키는 눈물조차 선택할 수 없을 만큼 깊디깊은 슬픔에 빠졌었고, 그 슬픔은 아마 지금도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루키가 언어로 바꾸지 못한 것들을 대신해 적은 것이 클래식이고, 재즈고, 밥 딜런의 노래일 거라고.

그래서입니다.

이 밤, 하루키는 분명 웃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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