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Oct 18. 2016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나 빠트림이 없다

김만중 『사씨남정기』


긴 삶은 아니었으나 요즘의 세상을 살아내다 보니 도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불의와 악의로 가득 찼던 때가 있던가."


 세 살짜리 아이가 보아도 옳고 그름이 분명하여,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일에서 나라의 어른이라는 분들이 헛된 소리를 뱉어내는 세상. 속이기 위하여 속이고, 얼버무리기 위하여 다시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마저 속이는 세상.

 참으로 가혹한 세상입니다. 그 뻔한 말들, 거짓을 참고 지켜보고 결국 감내해야 하니까요.


 김만중은 350년쯤 전에 『사씨남정기』를 썼습니다. 국어 시간에 배웠듯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지요. 권선징악이라 함은 선은 복을 받고, 악은 결국 패망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 듣고, 배워온 역사만 봐서는 도무지 선한 것이 승리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이러므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앙화를 받는 법이니, 후인을 징계함즉 하나, 사정이 기이하므로 대강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바이니, 보시는 사람은 명심하소서. 희로애락을 지성으로 근고 하옵니다.
『사씨남정기』中

이 문장을 꼭 보내드리고 싶은 분들이 적지 않으나, 그분들은 분명 코웃음 치며 웃을 테니 저에게 허락된 지면에나 풀어놓고 말으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적자면 명나라의 가정 연간에 금릉 순천부에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유 현이라고 합니다. 유 현이 누구냐, 『사씨남정기』속 사 씨의 남편이 되는 유 한림의 아버지입니다.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뿌리가 되는 아버지의 이름과 이력, 성정과 배경을 먼저 풀어놓는 게 참 신기합니다. 

 유 한림이라는 이가 어찌나 뛰어나고 영특했는지, 어려서 학문을 깨우치고, 뜻을 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란 없는 것이라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왔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장가보내기로 마음먹고 매파를 보내 신부를 데려오는데 이 신부가 바로 사씨입니다. 사씨 집안의 처자라서 사씨일 텐데 이름을 밝혀주지 않는 걸 보면, 조선 시대에 여성의 위치를 알만합니다. 

 사씨의 재능과 자질 역시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유한림과 사씨는 천생배필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허나 하늘의 질투였는지, 아이가 생기지 않지요. 이에 집안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첩을 들이게 됩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첩이 들어오면서 집안에 분란이 시작됩니다. 

 첩으로 들어온 이는 교씨라는 인물이었는데, 첩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본부인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수를 꾸미죠. 그런데 이 수가 지독하고 또 악독합니다. 심지어는 친아들을 스스로 살해하기까지 하죠. 지위와 권력이 무엇이기에 자식까지 희생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교씨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악을 더해갑니다. 

 결국 유한림은 사씨를 내치게 되고, 교씨는 집안의 안주인이 됩니다. 교씨는 더 방약무인해져서 흥청 망정 한 삶, 문란한 삶을 살아가죠. 급기야는 유한림을 죽이고 집안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하지만 하늘이 유한림처럼 뛰어난 이를 죽도록 버려두지 않지요. 꿈에서 유한림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위험에서 벗어날 묘수를 전해받지요. 

 위기일발의 순간, 유한림은 이름 모를 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구해준 이가 바로 스스로가 내쳤던 사씨 부인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결국 유한림은 사씨 부인에게서 그동안의 일들의 진상을 알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집안을 일으킵니다. 그 사이에 교씨는 떠나고 없었지요. 기가 막힌 건 유한림이 교씨를 쫓거나 벌할 것도 없이 하늘이 벌써 손을 써서 악한 자들을 징벌했다는 겁니다. 악을 행한 죄로, 천벌을 받은 거죠. 

 이후 기적처럼 사씨는 아이를 낳게 되고,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보상하듯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며, 후대에 길이 남을 가르침을 전합니다. 


 대략적으로만 적는다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적어버렸군요. 

『사씨남정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배경이 조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굳이 명나라의 금릉이라는 지방의 유씨(한고조 유방의 후예로 보이는)라고 했는지도 궁금한 점이지요. 김만중은 생전에 관직의 삭탈과 복직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아무래도 미운털이 박혔던 모양이죠. 그런 김만중이 조선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조선을 배경으로 썼다면 왕이 뭐라고 했을까요. 

 "오냐, 그럼 너는 죽어라."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씨남정기』를 읽다 보면 유학자임에도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김만중이『구운몽』을 쓴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선'으로 분류되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악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믿음은 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 믿음이 완전히 깨져버린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의미도 사라질 테니까요. 


 도덕경이라고 하는 노자의 가르침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疎而不失)

대략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하나, 빠뜨리지 않는다'정도의 의미로 풀이됩니다. 우리가 악인의 단죄를 목격하지 못하는 건 악인이 벌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악인들의 악은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가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이죠. 

 

 네, 하늘의 그물이 꼭 책임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하늘의 그물도 이제는 눈이 멀었는지 선한 이들만을 자꾸만 잡아채 가는 것만 같습니다. 

쓰러뜨리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는 것도, 물러서는 것도 할 수 없게, 발목에는 족쇄를, 목에는 칼을 채우는 것만 같습니다.


『사씨남정기』는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하게 끝이 나지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치며, 많은 사람이 억울한 처지에서 오랜 시간을 괴로워하게 됩니다. 어느 세상이라고 해도 괴로움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요. 

 선한 이들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부당한 처지에 놓이지 않는 그런 세계는 불가능한 걸까요. 

 부당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부당한 처사입니다.

악인은, 악을 행하고, 마음대로 속이고 괴롭혀도 잘만 살 수 있는데, 이제는 때린 놈들이 오히려 다리를 쫙 펴고 넓은 데서 자고, 맞은 이는 더욱 움츠려야 하는 세상입니다. 하늘이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춘향전』을 인용하며 감상을 마칩니다.

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성고

촉루락시 민루락

가성고처 원성고


엄혹한 시대입니다. 

겨울이 멀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죽음으로 가는 미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