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걸음이라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니까.

by 가가책방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다지 예외적이지 않은, 다만 보통의 사람들처럼.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생각을 하지만 이어지지 않아서 생각하지 않느니만 못한.


그런 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지금도 지나갈 것이다."

이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나간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지나가는 걸 기다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게도, 나는, 기록하는 인간이니까요.


꿈을 꿨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꿈을 자주 꾸는군요. 어제도, 오늘도. 더 놀라운 건 어제의 꿈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의 꿈도.

정확히는 꿈 자체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꿈에서의 느낌을 기억하는 건데, 어제의 꿈이 불안이었다면, 오늘의 꿈은 짜증스럽게 굴었던 일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시간은 전역을 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완전한 여름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몹시 더웠습니다. 어찌어찌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무척 목이 말랐습니다. 하지만 당장 마실 만한 건 없었죠. 누나는 원래 끓여둔 물을 다시 끓여두었는데, 방금 끓였는지 너무 뜨거워서 마실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동생은 마실만한 걸 사 온다고 사 왔는데, 그게 위스키더군요.

조목조목 짜증을 냈습니다.

"아니, 끓여둔 물을 따라놓고 다시 끓여야지. 끓였던 물을 다시 끓이는 게 어딨어?"라고 했고, "술을 누가 마신다고 쓸데없이 이런 걸 사와?"라고 했을 겁니다.

더위가 갑자기 숨 막히게 느껴졌습니다. 옆방으로 가서 겹쳐 입고 있던 옷 두 개를 벗었고, 훨씬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기분이 나아지자 곧 미안해졌고, 그러다 꿈에서 깼습니다.


많은 일에 익숙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감정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게 사람입니다.

옛 어른 들은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우면 옛날 일이 떠오르는 법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처럼 지금까지의 '고독하고 못된 나'가 죽고, '화목하고 선한 나'로 태어나기 전에 옛일을 떠올릴 수도 있지요.


수십 년을 '나'로 살았지만, 언제나 '나'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생각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너는 참 모를 사람이다'라고 하면 막막해집니다.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한 거였습니다. 몰랐던 나, 생각하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기회는 드물며, 그런 기회를 통해 나를 더 알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만큼 나를 알아가는 일에 서툴기에, 대부분의 시도는 거의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면서 끝이 납니다. 하지만 분명 달라졌다는 것도 알죠. 실제로는 달라졌다고 믿고 싶은 것뿐인지도 모르지만, 믿는다는 건 때때로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니까요.


괴테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이해한 것일지 모르지만 <파우스트> 시작 즈음에 나오는 이 문장을 좋아합니다.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건, 이 애씀이나 방황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나는 나아갈 길을 찾느라 방황을 한다고 해도, 그 방황에 휘말린 사람들은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요. 파우스트 박사를 이기적이라고 욕한 날도 있건만, 다르지도 않아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바르지 못한 마음에는 바른 것도 휘어져 보인다'라는 말이 있죠.

변명이 아닌 걸 변명처럼 들으며, 변명하게 만든 걸 불편해하고 미안해하는 일이 일어나는 건 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도망치려는 사람은 언제나 뒷걸음질할 준비를 하는 법이다'라는 말도 있지요.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깨닫는 아침입니다.


감정이나 신변의 일을 적는 건 아무래도 어렵기만 합니다.

감상도 감정의 연장이고, 생각을 적는 일도 신변의 일을 적는 일과 다를 게 없건만 왜 다른 걸까요.


밤이 되면 잠이 오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뜨며, 끼니때가 되면 허기가 지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장사꾼의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수행을 통해 익힌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싯다르타>/민음사

장사꾼은 단식이 장사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오래 단식할 수 없었다면 지금 당장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당신을 찾아와 이렇게 얘기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은 사실 무척 무서운 말입니다. 영원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자기 생각 안에 갇혀 지내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싯다르타만큼은 아니지만,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새삼 깨닫는 건 사색 역시 방향이나 깊이가 중요하며, 기다림 역시 때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저 역시 자기 생각 안에 갇혀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죠.

그런 생각, 다만 계속해야겠다는 생각, 오늘 아침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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