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이 필요합니다' 경고등이 켜졌다.

나는 고장 난 배터리로 걸어가는 깡통 로봇 인지도 모른다.

by 가가책방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만의 배터리를 달고 살아간다. 배터리는 물리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정신적이라거나 심리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누구에게나 배터리가 있으며, 그 용량에는 '한계'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다.
배터리에는 수명이 있다. 어떤 방식, 형태의 배터리든 무한한 수명을 지니지 못했다. 충전식 배터리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충전 횟수나 용량에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배터리라고 해도 무한에는 닿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쓰지 못하게 된 배터리나, 효율이 떨어지는 배터리는 버리고 새 배터리를 다는 거다.
교환 역시 무한대라고 할 수는 없다. 기계는 물론 인간에게도 수명이 있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못쓰게 됐다가 나중에는 기계나 인간이 못쓰게 되는 거다. 인간이 못쓰게 되고 나면 배터리가 아무리 많이 남아 있어도 의미가 없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방전되어갈 뿐이다.

충전 방식에 따라 한 번 완전히 방전되면 다시는 못 쓰게 되는 배터리가 있다. 충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배터리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런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수시로 충전해주는 게 좋다. 그런데 어떤 배터리는 충전 횟수가 정해져 있다. 이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쓴 다음에 충전하는 게 좋다. 그래야 더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시작해놓고 왜 주야장천 배터리 얘기만 하는 건지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이유에서다. 오늘은 문득 나 자신이 배터리와 다를 게 무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이유.

오래전, 그러니까 6년 혹은 7년 이전의 기억은 많지 않다. 아마도 그쯤 배터리를 교환했던 모양이다. 그때 교환된 배터리와 함께 이전의 기억 일부 혹은 대부분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남은 기억을 시간으로 따지면 살아온 시간의 10분의 1이나 될지 모르겠다. 최근 6년 혹은 7년의 기억도 대부분 가물가물 하니 말이다.
배터리를 교환하는 거라면 대략 10년에 한 번쯤 교환하는 듯한데, 그렇다고 하면 앞으로 3년만 더 지나면 지난 10년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대멸종 같은 시기랄까.
그때까지 지금 이 기억이 남아있다면 내 기억이 대멸종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그저 기분 탓이었는지 알고 싶다. 내 기억을 충전하는 배터리는 평생 분량의 기억을 담을 만큼 충분히 크고, 넓은가?
솔직히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지금 상황만 생각해봐도 대답은 이미 나와있는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내 기억의 배터리는 고작해야 10년 정도 쓸 수 있는 내구성을 갖고 있는 거다. 넓이는 부족함이 없는지 모르지만 그 안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생각이 많고, 내구성까지 부족해 자주 새어나가는 거다. 그래서 늘 잊고, 잊어버리고, 까먹고, 잃어버리는 거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억의 대멸종 후에 남는 기억이 뭘까?
남길 수 있는 기억을 택할 수 있다면 나는 2016년의 7월부터 2017년의 1월까지를 택하고 싶다. 고작 6개월인데 그 정도는 기억시켜 주겠지.
특별한 이유가 있지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이 생각했고, 즐거웠다가, 고민하고 또 안타까움도 느끼고, 갈등하고, 슬퍼했다가, 즐거워 한 날들.
근래의 몇 년을 돌아봐도 그 어느 때보다 기억에 밀도 높은 사고와 사색과 기쁨이 담겨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란다고 하면 또 잊히겠지. 기억이란 무자비하고 또 무심하며, 때로는 잔혹하니 말이다.

나는 어떤 방식의 배터리일까. 완전히 충전하고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움직일 수 있는 배터리일까 아니면 수시로 충전을 해줘야 하는 배터리일까. 어쩌면 한 번 완전히 방전되고 나면 다시 충전되지 않는 까탈스러운 배터리 인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어 나름의 결론을 내리자면 내 배터리는 한 번 완전히 방전되면 다시 쓰지 못하게 되는 까탈스러운 배터리로 보인다. 더욱 좋지 않은 건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전조를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내게 있어 이 특성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뭔가가 끊어져서는 다시는 움직이거나 쓰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거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원하거나 어떻게 하지 않아도 저절로 새 배터리로 교환되어 버린다. 그 전의 밀도 높은 감정과 기억도 이전의 배터리와 함께 대부분 사라진 모습으로. 거듭 경험한 허무와 공허감은 대체로 그 시기와 일치한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쯤의 간격을 두고 내 기억은 완전 방전을 반복한다. 충전의 과정 없이 온 시간을 소모해버리는 거다. 학습할 때도 됐을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나마의 장치로 만들어진 게 읽고 쓰는 습관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위대하다. 누가 이런 말을 한 걸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이기에 불완전해서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뉘앙스의, 기억은 믿을만하지 못하는 식의 말이 있다. 솔직히 기록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록은 해석되기 마련이고, 해석은 그 기록을 대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내가 남겨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어제의 내 기분, 마음까지 완전히 알아차릴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순간에 기억이 방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방전되지 않는 안정적인 상태, 0을 향해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그나마의 위안이었던 기록도 점점 힘들어진다. 왜인지는 몰라도 세상이 나의 방전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배터리의 수명보다 본체인 인간, 내 수명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파랗게 젊은 게 별소리를 다한다 할지 모르지만, 새파랗게 젊은 건 도대체 몇 살까지인가.

결과적으로 방전은 진행 중이다. 급격한 건지 완만한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변덕스러운 속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조바심이 난다. 기록하지 못한 생각, 흘려보낸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자꾸만 분노가 되려고 한다. 낙서도 되지 못할 정제되지 못한 언어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다 할퀴듯 혀를 통해 내뱉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어쩌면 나는 고장 난 배터리로 걸어가는 깡통 로봇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걸을 때마다 가슴이 텅텅하고 울리는 건지도 모른다. 충전이 필요하다. 완전 방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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