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행복의 노예로 살 수 없다.

by 가가책방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요.

"나는 왜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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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적기 전에 하나 더 묻고자 합니다.

"나는 행복 없이도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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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물음에 답해봅니다.

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두 번째 물음에도 답해봅니다.

제 대답은, "예."입니다.


질문은 질문이고, 대답은 대답일 뿐이니 예이거나 아니오거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누구의 답이 옳고, 다른 누구의 답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덧붙여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를 적어보려는 겁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뭘까요.

'불행'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불행함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요?

반대로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모두 행복한 걸까요?

잘은 모르더라도 '꼭 그렇지는 않다'는 느낌, 받으셨나요?


행복의 반대말이 뭔지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별로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고요.

한 가지만 알고 넘어갈 생각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은 아니라는, 한 가지요.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사실입니다.

이유는 두 번째 물음에 답한 것처럼 '행복 없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지 않습니다.

행복이 목적이 아니기에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행복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루하루 생활에 비교적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만족하는 삶이 행복한 삶 아니냐?"라고요.

아닙니다.

만족은 만족으로 남겨두고 싶은 겁니다.

굳이 '만족 = 행복'이란 식의 등식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지만, 한 때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읽은 책들이란 게 온통 행복해지는 비법을 담고 있다는 '행복 지침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왜 불행한가'하는 질문만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다음에 찾아온 건 분노였습니다.

기이한 건 불행하기 때문에 분노했던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언제나 분노의 이유는 '불행함'이 아니라 '부당함'이었던 겁니다.


"왜? 나인가?"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건 부당하고, 잘못된 거라고 믿었던 겁니다.

마치 나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말이죠.


행복에도 불행에도 정해진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한 사람이 행복해하는 이유와 한 사람이 불행해하는 이유가 같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금 복잡하게 말하자면 행복은 '현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복은 '해석의 문제'라는 겁니다.

행복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불행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도 행복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떤 일에는 50만 달성해도 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99를 달성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불행해지지는 않습니다. 내가 100을 추구한 건 스스로 만족하기 위함이지 불행해지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파랑새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처럼 행복이란 '이것이다'라고 특정지어지거나 고정되어있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모두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조건은 대단히 구체적이고 이루기 힘든 것 투성이입니다. 더 좋지 않은 건 행복을 달성하지 못하면 불행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일입니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가 아니라 "나는 왜 불행한가?"하고 묻게 된다는 거죠.

뉘앙스의 문제겠지만 '왜 행복하지 않은가?'하는 물음은 조건이나 이유가 반드시 '내 안에'있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왜 불행한가?'하는 물음은 어쩐지 내가 '잘못하고 있어서' 불행해지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건 단순히 제 기분 탓일 수 있습니다.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가 '왜 불행한가'라고 묻지 않는 이유는 분명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행복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그래서 행복에 이르기 위해 정복해야 하는 조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여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과 기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행복을 갈망할 이유도, 불행을 걱정할 이유도 줄어들 테니까요.


결국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많은 책 속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무수히 쏟아냈으니까요.

가끔 허전하거나 공허할 수도 있고, 울적하거나 서글퍼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고 해도 불행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표출되고, 느껴질 뿐입니다.

앞서 적은 걸 가져다 쓰자면 감정 자체는 현상에 불과하기에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감정을 굳이 해석해서 어떤 결론과 짝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마시길.

나는 언제까지나 행복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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