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말보다 적은 글이 무겁다.

계속 써야 하는가를 생각하다.

by 가가책방

읽지도 않은 글에 공감을 누르는 내가 미웠다.

그런 이유로 읽지 않은 글, 공감하기 어려운 글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었다(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한 때는 어느 정도는 그 말에 동의했고, 공감하는 바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악플에도 구분이 필요하다. 악의만으로 똘똘 뭉친 댓글은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해롭기만 할 뿐이다. 그런 악플보다는 무플이 낫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공감, 댓글이 없어서 쓰기를 그만둘 정도라면 그만두는 게 서로에게 좋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공감은 구걸할 수 없다. 구걸해서도 안 된다. 공감이 없는 공감은 글을 망칠 뿐 아니라 글을 쓰는 이마저 망쳐버린다.

"왜 쓰는가?" 하는 물음에 남길 대답이 '관심'에 치우쳐있다면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봐야만 한다.

가볍기만 한 호응, 관심은 필연적으로 공허함을 부른다. 마음을 드러낼수록 드러난 마음에 상처를 늘리게 된다.

마음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이해가 없는 동정은 공허하기 마련이다.

공기는 아무리 들이켜도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하고, 얼음은 아무리 오래 품어도 따뜻해지지 않는다.


거품 가득한 공감보다, 차디찬 외면이 더 낫다.

적어도 헛된 기대에 부풀게 하거나, 허영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우스꽝스러운 일은 면할 수 있기에.


말과 글은 얼마나 다를까.

'실언했다'는 말은 종종하고,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실필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실언'이란 '실수로 잘못 말함'을 의미한다고 사전에 적혀있다.

'말실수'로 순화됐다고 덧붙여서.

'실필'이란 단어는 없다.

굳이 풀어 적자면 '글실수'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정치인 얘기를 안 할 수도 있지만 가장 흔히 문제가 되는 게 정치인들의 말실수(적어도 그들이 말하기로는)이기에 얘기를 조금 해보기로 한다.

자신의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거나 문제가 되면 아주 간단히 '그건 말실수였다'라고 변명하고 그치는 일이 잦다. 사람들이나 다른 정치인들도 웬만하면 넘어가 주는 듯 보인다.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이해다. 하지만 글은 조금 더 심각해진다. 가볍게 SNS에 남긴 글은 물론, 10년 혹은 수십 년 전의 글도 파문의 원인이 된다. 좀처럼 변명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용납되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말보다 글이 더 무겁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이렇게 적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참으로 경솔했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글이 말보다 더 무거운 이유가 하나는 아니지만 가장 큰 건 '도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말은 '혀'가 있고, 발성에 문제가 없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도구를 써야 한다. 펜일 수도 있고, 요즘에는 컴퓨터나 그에 준하는 장비가 필요한 거다. 또한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적고 난 후에 '올리기'를 거친다. 단계가 더 많은 만큼 수정이나 취소, 숙고의 가능성도 커진다.

앞서 적은 '실언', '실필'로 돌아가면 말실수보다 글실수가 더 어렵다.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글은 도구로 쓴다. 그래서 즉각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머릿속에서 떠올린 생각을 도구로 옮기고, 도구를 움직이는 동안 쓰는 사람은 한 번 더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얻는다. 쓴 다음에는 쓴 글을 읽어보고, 바로잡거나 고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갖는다. '도구'를 통한다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얼마든지 신중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반대로 더 경솔해질 수도 있다.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경솔해질 수도 있다는 거다. 고의적으로 경솔해진다는 말은 분명 이상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비꼬거나, 상처주기 위해 얼마의 악의든 담을 수 있다는 것. 말보다 글을 용서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는 제법 많은 글을 써왔다. 떠오르고 솟아나는 감정을 있는 대로, 없는 대로 쏟아내는 유치하고 부끄러운 글도 참 많이 썼다. 치기 어린 허세, 동정, 비판, 감상, 주장, 변명, 비난도 적잖이 주절거렸다.

떠오르는 대로 휘갈기고, 횡설수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가끔 부끄러워진다.

이제는 자제하고, 그만두자고 마음먹고 노력하기도 한다.

나쁜 버릇인 줄 알면서도 좀처럼 고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퇴고하지 않는 버릇이다. 반성하면서도 퇴고하지 않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나중에 용서를 구하고, 고칠 때는 고치더라도 '지금' 내 생각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욕심에서다.

나의 부족함과 미숙함을 오래 부끄러워하며 나아지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다.

내가 적은 글에 변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끄럽다고 말하려고 한다. 그때, 그날의 미숙함과 생각의 짧음을 반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적은 글 속에서 발견한 잘못을 지적해주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고마움을 느낀다.


영화 <미스 슬로운>에 남긴 비틀린 감상을 보고, '글쓴이 본인이 여자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고 꼬집어준 분이 계셨다. 나는 한 번 더 돌아봤다.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시간은 귀했고, 고마웠다.


길게 쓸 생각이 없었건만 또 주절주절 늘어지고 있다. 이제 끝낼 때다.

앞으로도 나는 경솔한 글을 쓰기도 할 테고, 여전히 비판자들을 기다릴 거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이 생각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대적으로 내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면 나는 처음부터 쓸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라.


어떤 부분에서 공감했다.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표현은 아쉬웠다.
이렇게 생각도 해봤다.
이런 건 아니다.
잘못되었다.

글 아래 적어준, 읽은 분들이 남겨주고 나눠준 생각들이 늘 너무 고맙고 또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나 혼자로는 떠올릴 수 없는 생각, 닿을 수 없는 사고에 이르기 위한 사다리 혹은 밧줄을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더 써 나갈 것이고, 실수하고 또 받아들이리라.


오늘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 때문이다'라고 시원하게 짚어낼 수 없어서 더 무거웠던 날이다.

그래서 뭐라도 끄적이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

다 적은 지금도 잠이 오지는 않지만, 분명 한 시간 전보다는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걸 느낀다.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그 마음을 끄적여 보기를 권한다.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좋다.

가지런하지 않아도 좋다.

의미나 목적이 없어도 좋다.

글은 말보다 무겁다.

다르게 말하면,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을 옮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거다.

무거운 마음이 글이 되어 마음의 무게를 옮겨 간다는 거다.

편안하기를 바란다.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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