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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16. 2017

오프라인 속 하루.

예감은 종종 빗나가기도 한다

8월 15일 하루.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오프라인을 시전해볼까?"


잠들기 전 마신 맥주탓이었는지, 1%남아있던 스마트폰 배터리의 숫자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시작됐다.

'나의 오프라인 라이프'


새벽 5시가 다 되어 잠들기는 했지만 처음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손목 시계의 숫자가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


허,,

잠시 믿지 못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귀를 기울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도 제법 굵은 듯, 함석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여덟 시간 가까이 자다니,,

오랜만의 일이지만 뭔가 믿을 수 없고 실감나지 않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 기이했던 건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것.


 읽다만 책이나 마저 읽을 요량으로 책을 폈다.

그런데 한 시간이나 읽었을까, 다시 잠이 쏟아졌다.

10여분 저항하며 비몽사몽을 오가다 이게 뭔가 싶은 마음에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눈 떠보니 3시도 못된 시간, 내친 김에 더 자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불이나 끄고 누울 걸, 자고 깨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면서도 귀찮음에 그 몇 걸음을 머뭇거렸다.

 4시를 넘겼을 때 마침내 일어나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기이하게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재미있는 책도 아닌 걸 굳이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모임 책이 아니었다면 진즉 덮었을텐데, 모임 책 선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6시, 밥을 짓기로 했다.

쌀을 씻고, 안치고, 샤워를 했다.


 스마트폰을 끔과 동시에 선풍기도 꺼놓고 하루를 보내보자고 마음 먹었었다. 개운함도 개운함이지만 양심적으로 안 씻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무슨 양심인지는 몰라도.


밥을 먹고, 책을 다시 폈다.

졸음이 다시 찾아왔다.


'아, 이 시간에 자는 건 밤잠을 설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될텐데.'하면서도 잠을 선택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하루에 몇 시간까지 잘 수 있는지 한계를 알아보자는 심정이었다.

9시 넘어 다시 일어났다.

 잔 시간을 다 합쳐보니 14시간이 넘었다.

24시간 중에 14시간 넘게 자다니.


열한 시, 읽던 책을 마저 읽고 다른 책을 폈다.

열두 시가 지났다.

광복절이 지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누워있으면 잠들겠지 하는 마음으로 불을 끄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이나 지난 후 시간을 확인했다.

어스름한 불빛에 비친 손목 시계의 바늘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후, 한 시간이나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군.'

그리고,

'잠들지 못했군.'

그래도 좀 더 누워 있으면 어떻게든 잠들 거라고 생각했다.

'후후, 두 시군. 잠이 오지 않는군.'

두 시를 넘겼다.

불을 켰다.


또 다른 책을 폈다.

꿈에 관한 책이다.

서문을 읽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스마트폰을 켰다.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의외.

휴일 하루쯤, 연락이 오는 일이 없는데,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메시지,,,

 예감이 빗나갔다.


 회사 동료다.

아, 직무유기.

생각 없이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답장을 했다.

답이 왔다.

허,,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오픈채팅으로 열어둔 창에도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현재와 과거와 상처와 치유'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답을 구하는 메시지였다.

음, 현재의 내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책임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잠들지 못했던 두 시간 동안 내내 떠올렸던 것도 과거와 과거의 사람과 과거의 일이었음이 생각났다.

 이 무슨 우연인가.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이제 곧 세 시다.

어제 새벽 5시부터 스마트폰도, 에어컨도, 선풍기도, 노트북도 없이 지내봤다.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선선한 바람마저 불었기에 더운 줄도 몰랐다. 잠만 자서 그랬는지 한 끼만 먹고도 배고픈 줄 몰랐다.

동시에 내게서 답을 구하는 메시지가 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알 수가 없었다.

 소리는 들었지만 밖을 내다보지도 않았기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도 몰랐다.

 

참으로 천하태평, 내 방안의 평화였다.


포부는 원대했건만, 남은 건 고작 불면의 밤 하나다.

박노해 시인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다시 읽었다.

 사라지지 말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사라지고 마는 그대는 얼마나 많던가.


이제는 정말 잠들지 않으면 위험한 시간이다.

기록도 했고 반성도 하고 있으니 잠이여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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