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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y 21. 2017

반성일기 1.

2017년 05월 20일 토요일 하루.

반성을 시작하기 전에.


국어사전.

반성(反省) : 자신의 말이나 행동, 생각에 대하여 그 잘못이나 옳고 그름 따위를 스스로 돌이켜 생각함.


반성이라는 건 부정적인 거라고, 잘못했을 때 하는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전을 찾아보니 오히려 중립적이군요. 

 '옳고 그름'을 '스스로 생각'하는 일.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물론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지요.


 중요하면서 한계이기도 한 건 '스스로'라는 겁니다. 타인이 옳았다고 말해준다고 해도 스스로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이 됩니다. 반대로 타인이 잘못이라고 해도 스스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 아니게 되고요.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반성에 열린 마음이 필요한 이유요.




시작.


무슨 대단한 고백도 아닌데 심장이 자기 자리를 알리겠다고 기를 쓰고 펄떡입니다. 

두근두근.

평소에도 자주 반성합니다. 잘못이나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말, 행동, 생각을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글로,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남기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에 앞서 '잊어버림'을 반성합니다. 

 언제나 비겁하게 망각으로 도망쳐왔습니다. 

무수히 도망치기를 반복해왔고, 앞으로도 또 수 없이 도망쳐오겠지만 전해 두고 싶습니다. 저 스스로에게요.

 "너는 도망쳐왔고, 도망치고 있으며, 도망칠 거야."

도망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도록 일러두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적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테고, 이 글을 지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둡니다.


잊지 않으려면 보통 이상되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약속은 또 다른 자기기만이 될 테니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떠올리겠습니다. 

남겨둔 글을 단서로 떠올리고 떠올려서 잊지 않음과 닮은 마음 가짐으로 살기 위해 다만 애쓰려고 합니다. 


'잊어버린다'는 건 수동적이든 적극적이든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를 부정하고, 관계를 부정하고, 사람을 부정하고, 과거를 부정하고, 세계를 부정하는 일.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상 전부를 기억하는 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죠. 그 전부를 기억하겠다는 욕심은 아닙니다. 

기억해야 하는, 기억하고 싶은 생각과 말, 행동을 기억하고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 간단히 잊히지 않기를,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객관적인 체하며 비수처럼 숨기고 있던 우월감을 반성합니다. 

하고 있는 말이나 행동이 거짓 없는 진심이라고 해도, 그런 나를 발견할 때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죠.

"부끄럽지 않아? 그만 하는 게 좋을 걸?"

하지만 한 편에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누가 안다고, 다들 그런 거야. 누구든 하고 싶은데 못하는 거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모르는 체 슬쩍 그 생각에 넘어가는 척합니다. 

부끄러워하는 나를 외면하고, 어깨를 으쓱해서는 잘난 듯 떠들어 대는 겁니다.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이 부끄러움임을 알면서도 계속 정당화할 근거를 찾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낍니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될 대로 되겠지'하고 생각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런 태도,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상처 입히는 비수를 무심히 휘두름을 반성합니다.


말 많음을, 지나침을 반성합니다.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하는 모임을 합치면 네다섯은 됩니다. 보통은 책 모임이죠.

시작은 욕심 때문입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 다들 읽어봤으면 하는 작가, 책을 읽으며, 읽고 난 후 느끼는 생각들을 다른 사람도 알았으면 하는 '열정'이라고 보기 좋게 포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지, 사람들이 바라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도 알고 있을 일을, 생각했을 생각을 나만 떠올린 듯, 나만 아는 듯 떠드는 건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데 쓰는 게 스스로에게나 세상에 이롭겠죠.

 다만 가볍게 권하고 지나가는 게 낫겠습니다. 더 듣고 싶은 이라면 찾아보거나 청할 테니 그때에 달리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요. 장황하게 줄거리를, 작가를, 소재를, 표현을 늘어놓지 말아야겠습니다. 

 자제하려는 이유, 반성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 말 많음이 하찮은 우월감으로 향하기 쉽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라고, 성숙해진 후에.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이 잠잠해진 날에는 조금 더 말하기로 합니다. 

 오늘, 독서 모임이 있으니 그 자리에서 시작해 봐야겠습니다.


찰(察).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문득 떠오른 단어입니다.

'살핀다'는 의미였는데, 여러 의미로 살펴 나가겠습니다.


 또 말 많음을, 지나침을 반성합니다.

지금도 다 버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완전히 버릴 날을 기대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보다 몹시 오만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오만을 꺾어준 건 독서 모임에서 만난 스승들이었어요. 지금도 고맙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그때의 만남들이 제게는 천만다행이었죠. 

 돌려서 말하거나 얼버무리는 일 없이 들려준 신랄할 비판들. 오만으로 가려둔 부끄러움을 끄집어내 준 일. 

그 경험은 큰 변화(늘 넌 아직도 멀었다고 말씀하시고, 멀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의 계기가 됐습니다.

스파르타식 단련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소크라테스식 깨우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충격요법을 과신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느끼고,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효과가 있을 거라고 하는 또 다른 오만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말았죠. 

그럴듯한 충고들을요. 어젯밤, 공허한 줄 알면서도 '그래야 한다', '이래야 한다'는 말을 많이도 했습니다. 

사실은 거슬렸던 거겠죠. 헤세가 <데미안>에서 말한, '내 안에 있는 미워하는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을 다시 겪었습니다. 알면서도, 그 미움이 내가 부끄러워하는 자기 모습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모습을 보게 만드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하는 말이기도 했던 겁니다.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해도, 함부로 조언하거나 충고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자꾸 잊습니다. 미숙함이 부끄럽습니다. 


반성할 일이 산더미지만, 하나만 더 반성하고 적기를 그치려고 합니다.

술 취함을 반성합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막 말을 쏟아내거나, 행패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반성하는 이유는 취함을 이유로 너무 많은 걸 허락받으려 하는 나약함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평소라면 더 하지 않았을 말도, 조금 더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취했나 봐. 취하면 저럴 수 있지'하는 이해를 기대합니다. 

 귀 기울여야 할 때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하고, 간신히 들려준 말도 잊어버리기 더 쉬워집니다. 무책임해집니다. 

 참, 떠올릴수록 부끄러운 일 투성이군요.


  스스로의 말, 행동, 생각이 만든 부끄러움은 온전히 제 몫이어야 합니다. 

반성하되 지나치지 않도록, 다스려가겠습니다. 


계속.


반성을 시작한 계기가 된 메모를 덧붙입니다.

작성 시간은 2017년 5월 20일 오후 2시 35분입니다.

부족한 나, 채워지지 않은 나를 생각할 때면 조금은 불행하다. 누군가에게 감히 조언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부끄러워진다. 순간의 부끄러움을 모른 체 하는 나를 발견할 때 다시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싶다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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