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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May 11. 2018

[오늘부터 소확행] #1 작은 발견

일상 속 작지만 확실한 행복 발견

책을 좋아합니다.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좋아하죠.

우선 책 자체를 좋아합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하죠.

읽은 책에 대해 말하고 쓰기도 좋아합니다.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추천하기도 좋아합니다.

책을 소장하는 게 좋아서 읽을 책, 안 읽을 책, 읽고 싶은 책, 예쁜 책 등을 모읍니다.

받는 이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면 책을 선물하는 일도 좋습니다.

 종이책은 특유의 감촉, 물성이 좋고 전자책은 가벼움과 즉시 볼 수 있는 점을 좋아하죠.


결국 조금은 맹목적으로 편애하는 일.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그런 맹목과 편애의 한 갈래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나 자신이나 다른 타인 누구도 해치지 않으므로 참으로 보기 드문 무해한 맹목입니다.

나쁠 게 없죠.


 책이 주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있지만 첫 번째 소확행은 발견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형 중고 서점에 종종 들릅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들러서 몇 권, 몇십 권씩 샀더랬는데 이제는 그런 충동 구매나, 분별 없이 나르는 일은 그만두게 됐죠. 성숙해졌다기 보다는 지쳤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운듯 해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책 이사를 한 번 하고 났더니 부쩍부쩍 늘릴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군요.


 그럼에도 늘 기대를 품고 서점에 들릅니다. 오늘은 어떤 책을 발견할 수 있을까?

중고 서점이 좋은 건 책 값이 싸다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사지 못하게 된 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이 더 크죠.


 중고 서점에서의 소확행은 책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만난 이런 책들과의 만남 말이죠.

 별 생각 없이 책장 사이를 오가다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을 뽑았을 때 비로소 사고 싶었던 책임을 깨닫게 되는 작은 발견의 순간.

 오늘의 소확행입니다.


갈매기의 꿈_리처드 바크

북타임 출판사에서 출간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지금은 품절된 도서입니다. 좀 더 예전에, 아직 북타임 출판사에서 이 책과 같은 시리즈의 책을 판매할 때에 구매한 다른 작품들이 있어서 알게 됐죠.


 이 책 특징은 표지가 화려하고 예쁘다는 겁니다. 단순히 인쇄에서 끝난 게 아니라 후가공으로 공을 들여 반짝이는 표지를 만들었죠. 제목이나 하나 혹은 몇 군데에 강조 효과로 반짝였다면 덜 인상적이었겠지만 이 책 시리즈는 바탕이 되는 색 하나와 그림이 되는 색 하나, 단 두가지 색깔만으로 열 가지 색을 섞어 그린 표지보다 더 인상적인 느낌을 만들어 냈습니다.


 새책 냄새 맡기를 좋아했었습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냄새 맡는 일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중고책은 다양한 냄새를 머금습니다. 어디에 두느냐, 어떻게 두느냐, 무엇에 썼느냐.

보이지 않는 시간, 책이 보낸 역사를 짐작하게 하죠.

 <갈매기의 꿈>에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났습니다. 벽장이 있는 집이라면 벽장 속에, 아마도 상자에 담겨서 보관된듯 싶었습니다. 양장인데도 모양이 어그러지지 않은 걸로 봐서 바로 눕혀져 있었을테고요.

2010년에 발행된 초판 1쇄 본입니다.

지금부터는 하나의 재미, 즐거움으로 읽어주세요.

구매 시기, 보관 상태, 냄새로 미루어 짐작하기에 이 책의 원 소유자는 나이가 어리지는 않을 듯 합니다. 30대 후반 혹은 40대. 지금은 50대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혼자라면 아이가 없거나 다 자라서 독립한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무척 깨끗이 관리, 유지하시는 분입니다. 꽤 많은 책을 갖고 계실듯 해요. 사서 한 번 이상 읽으신 후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박스에 담아 보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 박스에 담아 보관은 해도 나프탈렌까지 넣어 놓는 일은 없습니다. 탈취와 벌레 예방까지 생각하지 않거든요.

 꽤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근거는 책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미루어 봤을 때 많이 다뤄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죠.


 책 한 권을 샀을 뿐인데, 상상하고 추측하는 즐거움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책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죠.


 <갈매기의 꿈>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모든 갈매기들이 하루하루 먹고, 번식할 생각으로 보내고 있을 때 단 한 마리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만은 최상의 비행, 최고의 비행을 위해 연습하고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이단아.

그러던 어느 날 무리의 질서를 흐트린다는 판단에서 조나단 리빙스턴은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거듭하죠. 마침내 보통의 갈매기를 뛰어넘은 조나단 리빙스턴은 천국이라 여겨지는 더 높은 세계로 옮겨 갑니다.

 옮겨간 세계는 천국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과 비슷한 갈매기들과 만날 수 있었죠. 자신이 최고의 비행술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조나단은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 걸 깨닫고 더 많은 노력과 도전을 계속합니다. 마침내 갈매기의 한계를 뛰어넘게된 조나단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지 아니면 어쩌면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위해, 과거 홀로 고독과 싸우며 노력해야 했던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위해 얼마 간의 시간을 할애 할지.

 조나단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비행을 위해 연습을 하다 무리에서 추방당한 오래 전 자신을 닮은 제자를 만나죠. 조나단은 그 갈매기에게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 후 더 많은 갈매기가 조나단에게 가르침을 청합니다. 날개가 불구라 날지 못했던 갈매기도 자유롭게 나는 법을 배웁니다.

  조나단은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죠. 하지만 조나단이 원한 건 그런 대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를 인지시키는 일, 이미 그들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돕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죠.


낭만적인,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데 배부른 소리할 처지가 아니라고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낭만 하나 없다면, 삶은 얼마나 메마르고 피폐해지는지요.

 여느 자기 계발서에서 전하듯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돕는다거나, 아직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거나 하는 답정 너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는 부디 세속적이기만 한 목표에만 얽매이지 말고 꿈을 품는 일 조차 포기하며 살아가지는 말자는 바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너무 힘들고, 바쁘며, 지치게 합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기는 커녕, 꿈을 생각하기도 전에 현실에 압사 당할 지경에 놓이기도 하죠.


 저는 언제부턴가 스스로의 의지를 너무 믿지 않게 됐습니다. 하면 된다는 말에 속거나 스스로에게 납득을 강요하는 일도 그만두었죠. 모든 걸 할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하고 명백하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책이 된 거고요.

 거창하게 전업 작가가 되어 글만 쓰며 살아가겠다는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라고 낙인 찍을 생각은 없습니다. 즐길 수 있을만큼 즐기며, 얻을 수 있는만큼만 행복하려고 하는 거죠.


 책장에 꽂힌 책, 손에 들고 있는 책은 내려놓거나 비우기가 수월했습니다. 근심이나 걱정,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마음을 내려놓거나 비우기가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지금 내려놓을 수 없는 건 잠시 더 그대로 내버려두고 지금 집어들 수 있는 걸 들어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소확행은 유행이나 누군가에게 보여야할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작은 마음의 위안, 조그마한 기쁨.

진짜 소확행을 찾아가시길 응원해요.

첫 번째 '오늘부터 소확행', 작은 발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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