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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Sep 08. 2017

확실한 불행보다 불확실한 행복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_프랑수아즈 사강>

책 제목에 마침표가 찍힌 책을 본 적 있으신가요?

적어도 제 기억에는 그런 책이 없었습니다. 종종 쉼표나 물음표, 어쩌다 느낌표 정도가 고작이었죠. 그래서였을 겁니다. 이 책 제목에 붙은 말줄임표가 유난스럽게 느껴진 이유 가요. 

‘마침표도 아니고 말줄임표라니 이 무슨!?’ 

 책을 읽기 전부터 문득문득 궁금함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이 말줄임표는 뭐야? 소설 내용이랑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거야?”라는 궁금증이었죠. 

제게 말줄임표의 뉘앙스는 머뭇거림 혹은 망설임, 불확실함과 두려움이었기에 ‘해피엔딩은 아니겠군.’하는 예감도 따라다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죠(웃음).


책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 두면 읽을 때나 해석할 때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제목에 있는 이름, ‘브람스’에 관해서요.

브람스는 40년 동안이나 한 여인만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죠. 브람스가 사랑한 여인의 이름은 클라라, 브람스의 스승이자 음악가인 슈만의 부인이었습니다. 클라라가 죽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도 죽습니다. 마치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없는 세상에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죠.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열네 살이 많았습니다. 음악가 슈만의 부인이기 이전에 ‘여자 베토벤’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음악가였죠. 결혼 후에는 작곡 활동을 그만두지만 브람스와 교류하며 조언을 해주거나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합니다. 브람스에게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뮤즈로서는 완벽한 존재였던 겁니다.


자, 이제 책 얘기를 시작하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아홉 살의 폴에게는 로제라는 오랜 연인이 있습니다. 폴은 로제에게 일편단심이지만 로제는 종종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우기도 하죠.
 폴은 그런 로제를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합니다. 다른 여자, 누구를 만나든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죠. 폴은 이런 게 사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로제는 자신을 믿는 폴을 이용합니다. 자유를 즐기면서도 폴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죠. 자신이 바람을 피우는 건 일시적인 유희일 뿐이고, 언제든 돌아가기만 하면 폴이 자신을 사랑으로 환영할 거라 믿고 있던 거죠. 그런 그에게 연적이 나타납니다. 스물다섯, 새파랗게 어린 시몽이라는 존재 가요.  
 시몽은 어머니의 의뢰로 실내장식 일을 하러 온 폴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폴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며 사랑을 고백하죠. 하지만 폴은 너무 어린 시몽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 가요? 마침내 시몽은 폴을 얻게 됩니다. 이 사랑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은 시몽이 폴을 브람스 연주회에 초대하기 위해 보낸 편지 속에 담아 보낸 문장입니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나이 차이는 열네 살이었고, 시몽과 폴의 나이 차이도 열네 살이었습니다. 참 기막힌 우연도 다 있죠?

소설은 시몽의 구애 과정과 폴이 시몽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 로제의 갈등하는 내면을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 그려냅니다. 하지만 번번이 바람을 피우는 로제와 자신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는 시몽 사이에서 갈등하는 폴의 태도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열렬히 구애하는 남자를, 자기 아이를 낳아주었으면 한다는 젊은 남자를 마다하고 왜 거짓말하고 핑계만 대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사랑하지?’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결말에 닿을 때쯤 갈등의 이유로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바로, ‘불확실함’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 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서른아홉의 폴은 스물다섯의 시몽과 자신을 비교하며 ‘늙었다’고 말합니다. 마치 더는 위험을 감수할 수도, 불확실함과 싸워 적응할 자신도 없다는 듯이요. 

‘자신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며 영원을 약속하는 시몽이지만 언제 그 사랑이 변할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불안했던 게 아니었을까?’

‘로제의 핑계, 거짓말, 바람피우기는 이미 여러 번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자신에게 돌아왔기에 오히려 익숙한 거짓말과 싸우는 게 덜 불확실하고, 덜 두려웠던 건 아닐까?’

여전한 의문을 남기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이라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제 삶을 향해 그 화살표를 돌렸습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가 느끼는 두려움들, 불확실함 속에서 망설이고 머뭇 거리게 만드는 고민들에 답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된 거죠. 


 여러분들도 이 문제 앞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익숙함과 결별하고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일, 새로운 꿈을 선택할 수 있나요?

 세상은 마치 모험과 도전이 젊은이의 특권이자 의무인 것처럼 말하지만, 불확실함으로 뛰어들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위험해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타협하고 숨었다고 해서, 패배했다고 해서 비난받아도 되는 건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소설의 결말은 작가가 쓴 그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선택지가 남아 있죠. 제가 아는 것,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뿐입니다. 


*덤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됩니다. 너무 이른 성공 때문이었는지 오랜 시간 방황하죠.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토록 자기 삶에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한 그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며 머뭇거렸다는 것, 그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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