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목록
비흡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불쾌하고 화나는 경험.
길빵이다.
길빵이란 길을 가며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표현이다.
남녀 노소를 떠나 길을 가며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다 싫다.
가족은 물론 알고 지내는 이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유유상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까닭에 더욱 더 담배 연기에 익숙하지 않고 또 좋아할 수도 없다.
길빵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앞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연기를 피하기가 어렵다. 10미터쯤 앞을 가며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은 특히 짜증을 유발하는데 따라 잡기도 애매하고 멀리 떨어져 가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뒷통수를 힘차게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둘째로 출근 시간의 유쾌한 기분이나 비온 후의 맑은 공기를 즐기려는 기분을 망쳐놓는다. 그들에게 내 청량한 기분을 망칠 권리를 누가 줬단 말인가?
셋째로 간접 흡연은 직접 흡연보다 더 해롭다는 연구가 나온지 오래다. 왜 내가 그들의 기호를 맞춰주기 위해 건강까지 위협받아야 하는가? 그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등한 권리인 담배를 피우지 않을 권리가 내게도 있다. 동시에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권리, 내 건강을 지킬 권리 또한 갖고 있다. 그들의 자유와 나의 자유는 상쇄된다고 해도 나의 건강권을 위협할 권리가 그들에게는 없으므로 권리 상으로도 내가 우위에 선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넷째로 이기적인 자세가 싫다. 자기 생각만 하는 거라고 밖엔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 무례함이 정말 싫다.
은근히 다혈질인 나는 담배 피우며 걸어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하고, 담배를 꺼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꺼주는 사람도 있고, 반말하며 '뭐?'라거나 '왜?'라며 되려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러다 싸움난다'며 나를 말리고, '유난 떨지 말라'며 충고하기도 하는데, 나는 나의 건강과 기분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낼 권리가 있고, 다툴 수도 있다.
친구 중에도 담배를 피우는 녀석이 있었다. 그는 한 가지만은 꼭 지켰는데,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거였다.
담배를 피울 때는 꼭 한쪽으로 비키거나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으로 옮겨 갔고, 꽁초를 내던지고 자리를 뜨는 일도 하지 않았다.
길빵을 하는 대부분의 흡연자는 아무 데나 침을 뱉고, 꽁초를 던지고 간다. 꽁초에 붙은 불을 끄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들의 머릿 속이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더라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
자유를 말하고 주장할 때에도 때와 장소, 상황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외의 다수가 불쾌해 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몰라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지나가며 쳐다보는 시선을 몇 번이나 느꼈을 거다. 그게 관심이라고 착각하는 거라면 얼마나 깊은 착각의 늪속에 빠져 사는건지 측량할 수가 없다.
자신의 무례로 타인이 불쾌함을 느끼는 일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 걸까? 이 의문에 뒤따르는 의아함, 어처구니 없음, 화남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담배 하나 마음대로 피우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말라.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들이 말이다.
자신의 권리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의 권리를 짓밟으면서 동시에 존중받기를 바라는 건 볼 때마다 강아지를 발로 차면서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악독한 주인의 행동이나 다를 게 없다.
주는 게 있는면 받는 게 있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우며, 내가 바라지 않는 걸 타인에게 행하지 말고, 내가 바라는 걸 타인에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 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렇게 싫은 소리를 하면 또 와~하고 덤벼드는 사람도 있겠지.
뭐, 좋다. 나는 떳떳하고 당당하니까.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하고 기본적인 거다.
보행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거나 빼앗기고 싶지 않은 거다.
나는 길빵이 싫다. 그들의 무례함과 그로 인해 잃어버리고 마는 마음의 평화와 원치 않는 연기 속 독소를 마셔야 하는 고통을 당하는 게 싫다.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면, 존중받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태도를 취할 일이다. 그렇지 않은 권리의 행사를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폭력'
길빵의 다른 이름은 폭력이다.
나는 맞고 살 수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고 거부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