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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05. 2017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몇줄리뷰

목적도, 주장도 뚜렷하고 단순한 책이다.
열여섯 명이나 되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을 모아두었음에도 결론에 이르면 이질감이 없을만큼 한결같다.


 제목 그대로, 과학이 되려는 종교세력(전부는 아닐터이나 실재하는)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는 것.
 창조론은 종교에서는 통용되나 과학이 될 수는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 이론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지적설계론'이다. 인지를 초월한 지적 존재가 우주는 물론 인류와 생명체를 설계했다는 게 그 요지다.


 주장만 했다면 이 책이 나오지는 않았을텐데 2006년에 미국의 한 주에서 과학 시간에 지적설계론을 가르치는 과정이 통과됐던 모양이다. 결국 미국의 수정 헌법 1조에(국교 조항) 위배된다는 주장과 충돌했고 재판까지 진행됐다.
 이 책 말미에는 그 재판의 판결문이 실려 있는데 앞서 열여섯 명이 주장한 내용, '지적설계론'이 어떤 점에서 과학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하는데 쓴 근거들이 망라되어 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대답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전제는 '입증 가능하며 반론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학은 소위 '진리'보다는 '원리'를 탐구하는 거다. '지적설계론'의 경우 주장과 이론은 있으나 누구도 증명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설계자가 인지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설계자 자신을 제외한 어떤 존재도 스스로(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런 결정적인 이유로 종교는 과학이 될 수 없다는 거다.


흥미로운 부분을 몇 군데 발췌해 두었다. 끝까지 읽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혹 관심이 있을지 모르는 몇몇을 위해 보탠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몸을 만드는 암호문의 무작위적인 변이들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다.
139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사제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꼴사납고 소모적이며 실수를 연발하는, 저속하고 끔찍할 정도로 잔혹한 자연의 소행들에 대한 책을 쓸 수 있겠는가!"
163

어떻게 그런 이론을 믿을 수 있느냐는 듯 '정말로'에 힘을 주어 "당신은 정말로 진화를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진화생물학자들이 답할 질문이 아니다. 물리학, 화학, 심리학, 인류학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듯이, 진화생물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특정 증거가 현재의 이론적 예측에 잘 들어 맞을 때, 다른 연구실의 과학자들이 같은 결과를 재현할 때, 그 증거가 모르는 부분을 메워주고 그래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질 때, 그 증거에 확신을 갖는다. 우리가 정작 대답할 가치가 있는 적절한 질문은 "당신은 정말로 진화생물학의 증거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이다.

마지막 발췌 부분의 핵심은 '정말로'다. '지적설계론'자들은 '믿음'을 강조하고, 그 방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질문을 던지지만 과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증거에 확신'을 갖는 거다. 신뢰할만한 증거, 증명이 존재하느냐를 과학은 궁리한다.


앞서 이야기한 '진리'가 아닌 '원리'를 궁구한다는 것.
한국은 '지적설계론'이 제법 활발히 퍼져가고 있고, 널리 주장되는 나라에 속한다. 기이하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우월주의자들이 강력히 주장하는 걸 기독교의 도입과 확산, 의미조차 다른 한국에서 믿고 따른다는 게 말이다.


 종교는 종교에 머물 때 그 순수함을 지켜낼 수 있다. 신이 모든 걸 만들었다고 믿는 건 자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믿음을 강요하며 가르쳐도 되는 건 아니다.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이 충돌하는 지점, 저마다의 주장이 궁금하다면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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