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연애를 못하는 서른네 가지 이유
“사람은 기대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자신의 것. 결국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기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 기대는 때로는 다른 사람 혹은 동물을 향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마치 그 기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런 기대들은 그 기대가 향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려는 경향을 갖게 되고 사람들은 기대를 주고 또 받으며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때로는 상부상조, 때로는 동병상련, 때로는 동상이몽이 되기 때문에 기대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태 가운데서도 무척 예측 불가능한 동시에 흥미로운 상태로 볼 수 있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운이 되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기대는 저주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재앙 정도는 됐다. 남자는 자신을 향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종종 부러 모른척하기도 했지만 남자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을 향하는 그 시선의 의미가 바로 기대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드러나는 남자의 날카롭고 치밀한 통찰과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에 대한 오해를 키워나갔다. 남자는 영웅놀이 속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자는 누군가를 위해 지적하거나 나서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 자신의 생각을 움직이거나 재단하려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남자는 그렇게 하고 싶었기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확신보다 착각이, 사실보다 거짓이 더 진실에 가까운 거라고 믿어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런 일은 남자를 비켜 가면 아쉽기 짝이 없다는 듯이 언제나 남자에게 찾아들었다. 사람들은 남자가 해결하거나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말을 건네기 일쑤였고 눈치 없는 이 남자는 생각 없이 거절하기가 보통이었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변덕스럽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만약 남자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번번이 저버리는 사람이기만 했다면 연애를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일은 없었을 거였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하나가 아니고, 한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히려 무고한, 그래서 동정받아 마땅할 것 같은 이 남자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남자의 잘못은 남자 역시 보통의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에서 전제되었으며, 남자 역시 사람들 속에서 크거나 작으며 길고도 짧은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만 남자에게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남자 역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남자의 기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첫 번째 기대는 남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예전과는 달리 거절의 횟수를 늘려가는 것이 그나마 그 기대의 빈도를 줄이고 수준을 낮추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을 뿐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기대에 대해서는 남자 스스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의욕적으로 매달렸었다. 남자는 만민평등주의 따위를 신봉하지 않았다.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하는 만큼 남자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소홀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어떻게든 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남자의 이런 간절하고도 소박한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 벌인 실수들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것은 누구를 탓하거나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잘못은 남자에게 있었다. 남자가 눈치가 없던 탓이었다.
사람들은 남자에게 “눈치가 정말 빠르다”고 말하고는 했다. 사실 오랫동안 남자 스스로도 자신이 눈치가 빠르다고 믿어왔었다. 30미터 밖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시선, 손에 든 물건, 낌새만 보고도 뭘 하려고 하는지 맞출 때도 있었다. 확신이 찾아드는 순간은 그 사람과 시선이 교차했던 순간이었고 2미터 정도까지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에 상대방은 이렇게 말할 거였다.
“덕이 참 많으세요.”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그 사람을 지나친다. 남자는 실제로 덕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을지, 그 많은 덕이 남자의 눈치는 1도 늘려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남자는 통화 상대의 행동을 맞추는 것이나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먼저 하는 일도 잘 했다. 그런 일은 분명 닮은 성향의 사람과의 사이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남자는 가장 결정적인 비결은 관찰에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 사람과 조금 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평소에 그 사람이 이 시간에 자주 하곤 하던 것이 있었는지, 며칠 전에 나눈 이야기라도 그 속에 오늘 일정에 관한 것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거였다. 남자는 아주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듯 비결을 들려주곤 했지만 이 비결을 들은 상대의 반응은 남자가 눈치가 없음을 절대적으로 증거 하는 거였다. 가장 흔한 반응은 이랬다.
“무서워, 스토커니?”
남자는 속으로 ‘응?’하고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들려준 설명 가운데 어느 부분에 변태적인 속성이 들어있다는 걸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남자의 특기(?)를 알고 난 후 거리를 두기도 했다.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무엇부터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남자가 눈치가 없다는 증거였다.
눈치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예언하듯 내다보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치의 효용은 상대방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에 있다고 봐야만 하는 거다. 상대방이 스토커냐며 눈치를 주었다면 남자는 농담이라며 눈치껏 받아냈어야 하는 거였다. 호감이 가는 사람이 나타나도 남자는 무의미한 눈치만 살피며 시간과 정신력을 낭비하곤 했다.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드러내고 싶다면 주말에 쉬는지를 묻든, 한밤중이라도 밥은 먹었는지를 묻든, 새로 개봉한 영화를 봤는지를 묻든, 눈치를 주고받을만한 메시지를 드물게나마 꾸준히 던져야만 하는 거였다. 그 물음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으며, 가끔씩은 직접적으로 ‘시간이 있다면 어느 날에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 건 어떤가?’하고 물어볼 수도 있다. 물론 메뉴와 장소는 상대방의 식성과 취향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도 모르고 있다면 지금까지 주고받은 대화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스스로 눈치가 빠르다고 믿어 온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절실히 깨달아야만 하는 순간인 거다.
“아, 남자에게 이 정도 눈치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남자는 ‘스토커니?’라는 물음에 자신의 발언과 행동의 어디쯤에 변태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되짚어 나가기 시작하고 마는 거다. 눈치라고는 신발 밑창에 까는데 쓰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눈치 없음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중증 환자가 바로 이 남자였다.
남자는 누군가 자신의 호감과 호의를 알아채고 먼저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이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서 다시 쌓이고 쌓여 십 년이 되고 지금에 이른 거였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남자가 모든 것에서 기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눈치가 없어서 고생하는 건 아니었다. 운명인지 필연인지 연애에 관해서만은 남자는 상대의 기대를 바로 읽는 것도,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도, 눈치껏 행동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이런 눈치 없는 남자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남자는 분명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연애를 못했다.
언제나 남자는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고 먼저 다가와주기만을 기다리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