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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Nov 30. 2017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_헤밍웨이

몇줄리뷰

한 권의 책을 읽고 짤막한 리뷰를 남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가끔 “내가 왜 사나”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가 ‘도무지 책을 못 읽었을 때’다.

이런 이유, 저런 핑계, 그런 사정.
참 많고 많은 사연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하다는 거다.

읽고 싶은 책들과는 멀어지고 본의 아닌 책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일상이 기어코 부작용을 낳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 책 얘기는 않고 딴 소리만 하고 있었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1899년 생인 헤밍웨이가 1926년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이다.

혈기방장한 젊음의 감각,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이 낳은 거대한 열패감이 욕구불만처럼 녹아 있었다.
후기 작품인 <노인과 바다>와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만년의 헤밍웨이가 평생 익힌 인내와 절제의 정수가 <노인과 바다>에 담겼던 게 아닐지.

젊고 아는 것 많은 이들이 종종 그렇듯 젊은 헤밍웨이도 그 시대를 보며 할 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시대뿐 아니라 풍경이며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들을 묘사하기도 즐겼던 모양이고.

총 3부로 이루어진 소설은 1부는 파리에서의 제이크의 일상을, 2부는 브렛이라는 영국 여성(제이크가 사랑하고 제이크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페인 투우 축제 장면을 주로 담았으며, 3부는 축제가 끝난 후 한 젊은 투우사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던 브렛이 돌아오는 내용이다.

한 가지 중요한 걸 잊었는데, 제이크는 제 1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인으로 전장에서 상처를 입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성기를 다쳐 고자가 된 남자다.

이 회복 불가능한 상처는 사랑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흠으로 작용해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 보내기를 반복하게 되는 결과를 부른다.

제이크와 브렛이 사랑하냐 아니냐는 당사자들이나 아는 문제이기에 논하지 말기로 하자.
성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사랑할 수 없다거나, 그걸 이유로 헤어진다면 사랑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허무주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마치 1차 대전이 기존의 세계를 끝장내버린 것처럼, 과거의 전통과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게 된 계기처럼 보이게 한다.

파리는 돈이면 제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도시, 애매모호한 관계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는 가벼운 공간이 되고 전통있는 스페인의 투우 축제도 이제는 가벼운 재미, 단순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버린 지금인 거다.

제이크는 이토록 절망적이고 막막한 시대를 좌절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살아내는 중이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고 해도,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고 해도, 염원하는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현실이다.

제이크 반스도, 브렛도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기에, 그들은 조금 더 상황에 끌려갈테고, 여전히 술에 취해 현실을 잊고,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친목 관계를 지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만 같다는 거다.

동명의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여 주인공 브렛이 그렇게 미인이라고.
헤밍웨이 작품 변천을 들여다보는 것도 은근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23초 정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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