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을 어깨에 올린 난장이를 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소설 <7년의 밤>을 여는 문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나'와 '내 아버지'에 연이은 '사형집행인'이라는 단어는 독자를 '나'의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듯 했다.
흔히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고들 한다.
영화 <7년의 밤>도 다르지 않았다.
마치 거인을 어깨에 올린 난장이처럼 기우뚱 거리고 비틀거리다 주저 앉은 듯 하달까.
달라진 설정들을 돌아보다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에 닿았다.
원작의 설정과 시점, 이야기 흐름을 좇는 것만으로도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됐을 거였다.
영화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할 지 몰라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는 법이니 조금 더 적어보기로 한다.
이야기는 우연한 사고로 오세령이라는 소녀를 친 현수가 사체를 유기하면서 시작된다. 소녀에게는 영제라는 아빠가 있었는데 이 아빠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정신 병자라고 밖에 할 수 없을만큼 딸에게 가혹하다. 소녀의 엄마는 영제의 구속과 폭력을 피해 달아났고, 영제의 집착은 더 심해진다. 현수는 소녀를 죽인 죄책감과 과거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억으로 괴로워 한다. 마침내 영제는 현수가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개인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현수의 아들을 현수의 눈 앞에서 죽게 만드는 방식으로. 영화는 현수와 영제의 갈등과 그 사이에 끼어 고통받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다. 영제의 복수가 성공할 지, 현수가 아들을 지켜낼 지 관객은 지켜볼 뿐.
"왜 그랬을까?"
모호한 질문인 까닭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나 스스로도 질문을 완성해 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유, 첫 번째.
너무 화려한 캐스팅.
장동건과 류승룡이라는 캐스팅은 영화 제작이 정해졌을 때부터 화제가 됐다.
멋지고, 잘 생기고, 유명한 배우들.
나였어도 이들 배우들을 더 많이, 더 자세히 보여주고,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으리라.
결과 이야기는 산만해지고 말았다.
현수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은 느낌이었고, 영제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인간적이었다. 영제라면 냉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인물의 주변을 압박하는 자기 소유욕에 철저한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 내내 현수는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며, 영제는 피 터지도록 때리고 휘두르는 모습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여운도 음미할 감흥도 없었다.
이유, 두 번째.
산만한 시점.
영화는 누구의 이야기인지, 어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면 좋을지 알 수 없을만큼 시선이 분산되어 있다.
현수의 이야기인가 싶으면 영제의 이야기가 된다. 주변 인물들, 심지어 마을의 주민 중 하나(주요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의 시선까지 섞여 있다. 게다가 그 시선은 예언적이어서 의미심장 하기까지 하다.
현수와 영제 사이의 원한의 최대 피해자가 되는 아들, 서원의 시선은 너무 흐릿해서 중심으로 드러나지도 못한다. 거인들 사이에 끼인 난장이의 모습 같달까.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거치면 영화에 입체감이 생기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만큼 여지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산만한 시점은 영화 마지막까지 몰입을 방해하며 지루함을 주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유, 세 번째.
인물 성격.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인물이 오영제라는 캐릭터다.
오영제가 딸과 아내에게 집착하는 이유, 통제하고 가르치려는 까닭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에 그치고 말았다. 소설에서 보여준 더 근본적인 이유, 완벽한 소유의 갈망과 결핍, 절제된 폭력성이 악인이긴 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로는 더 매력적이었다.
공개적으로 폭력성을 보이고, 간단히 자신을 잃는 오영제라니.
영화를 보면서도 느끼고, 끝난 후에도 느낀 건 지루했다는 거다.
그저 밋밋하고 지루했다.
이 지루함이 원작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재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거인을 짊어지려다 그 아래 깔려버린 난장이 같다는 생각만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