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원래라면 두 번째 이야기 시작도 암울해야 했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공주시 소멸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기로 끝을 냈으니까.
첫 번째 글에 이어서 쓸 얘기란 지금까지 공주시가 진행한 사업들의 실패 유형, 근거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진행 예정인 계획들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들이 됐을 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됐다. 공주에서 시작된 귀한 인연의 끈이 몹시 믿음직스럽고, 단단하다는 걸 깨닫게 됐으니까.
중요한 얘기에 앞서 먼저 하던 공주시 인구 감소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공주시 인구 감소는 속도와 규모에서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도 지지 않을 만큼 빠르고 크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원도심이 심각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현재(2020년 6월) 공주 원도심 인구는 2만 6천 명 정도다. 연간 인구 감소는 600명 정도.
26,000 / 600 = 43
대략 40년 후면 원도심 인구는 0이 된다.
면단위 인구 감소 속도도 만만치 않다. 면단위 인구는 4만 5천 명 정도. 1년 인구 감소는 1,200명 정도 규모다.
45,000 / 1200 = 37.5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 비극적일 정도로 암울한 현실 아닌가.
부여도 희망적이지는 않다. 6만 5천 명 인구에 연간 1,350명 정도씩 줄어든다고 하면 48년 후에는 인구가 0이 된다.
50년 후면 백제 수도였던 도시 두 곳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상.
암울해질 수밖에 없던 상상을 멈춰 세운 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다. 공주시 원도심을 무대로 이루어지는 지자체 주도 사업은 대부분 실패했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공주뿐 아니라 많은 지자체, 정부가 여전히 시민을 주체가 아닌 교육의 대상자, 수혜자인 객체로 보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문화도, 예술도, 역사도 해당 영역의 전공자나 권위자가 결정권을 갖는다. 주민 주도, 시민 제안이라는 제목이 부끄러울 만큼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여전히 인증을 위한 동원, 진행을 위한 진행 사례가 흔하다. 또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가 갖기 쉬운 보수성의 부작용인 견제와 정보의 일방통행 문제에 부딪히면 웬만한 열정을 품은 도전자라 해도 나가떨어지게 된다.
결국 정책 실패는 반복되고, 새로운 시도는 막히고, 목소리는 사라진다.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밖에 없는데 점점 나빠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거다. 그리고 인간의 영원한 아이러니, 뒤늦은 깨달음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혹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1년 반 전, 공주에 정착하고 책방을 준비하면서 그리던 책방의 모습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됐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놀랄 만큼 공간을 잘 이해하고, 반겨주는 이들과 만났다.
책방은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주었다. 그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무엇이 하고 싶었고, 무엇을 꿈꾸었으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뚜렷이 그릴 수 있게 됐다. 그건 부귀영화를 누리는 일만큼이나 좋은 일이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다. 하지만 혼자 누리는 차고 넘치는 부귀영화보다 낡고 오래되고 작은 극장에서라도 함께 모여 별로 유명하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게 더 좋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얘기다.
서울을 떠나 공주로 오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아담하고 조용한 도시의 분위기가 아닌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안다. 책을 좋아해서 책방을 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홀로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책을 계기로 모이고 만나 서로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음도 확실해졌다. 바깥 동네에서는 유명한 시인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태연하게 인사 나눌 수 있는 곳이 공주다.
오랜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듯 생각날 때 연락하고, 간단히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속엣말과 아이디어를 나누다 헤어지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도울 수 있을 만큼 돕고 지내는 일.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소중한 경험들을 이토록 흔하게 누리는 지금의 삶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 영화롭다.
하지만 공주시 원도심에는 극장이 없다. 극장이던 건물은 남아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 영화 상영은커녕, 극장 기능을 잃은 후 공연장이었다가, 학교 부속 건물로 쓰이다가, 10년 넘게 그 어떤 관리도 되지 않는 상태로 확실하고도 완벽하게 방치되고 있다.
공주 사람들이 아카데미 극장이라 부르는 곳의 현주소다.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은 그 극장 앞을 지날 때마다 그곳에서 본 영화,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 혹은 가족과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지금은 극장이 존재하기에 소중함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사라지고 난 후에는 가슴 아프게 느끼게 될 그리운 기억이다. 조금 더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극장이었던 공간에 세워진 무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최초의 공연 경험이었을 무대의 기억들을. 소위 청년이라 사람들은 어떨까, 부모님의 무대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데이트하던 곳이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을까. 더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폐허였고, 지금도 폐허였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철거될 건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더 어린 사람들, 이제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은 공주 원도심에 극장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이렇게 없는데 극장이 있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부정해 줄 증거가 없어진 후일 지도 모르니까.
아카데미 극장은 100년에서 조금 모자라는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100년. 인간의 평균 수명을 넘어선 시간을 존재한 만큼 공간은 무수한 기억을 품는다. 기억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기억은 너무 간단히 사라지거나 왜곡된다. 물리적인 공간이 사라지고 나면 그 기억도 함께 사라지기 쉽다는 얘기다.
원도심 재생, 뉴딜, 활성화.
비슷한 이름을 지닌 사업들 대부분은 그 기억을 품은 공간을 없애는데 기여했다. 오히려 앞장서서 부추기기도 서슴지 않는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관리 안 되는 공간을 억지로 유지하기보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차 공간 몇 면을 더 만들어 주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순서의 문제이긴 한데 원도심에서 사라지기 위해 공간이 부서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팔아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편리한 아파트,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인접한 도시의 신축 건물. 그렇게 사람도 떠나고 공간이 사라지고, 공간이 사라지자 사람이 돌아올 계기나 의미도 사라졌다.
큰 기억을 품고 있는 건물일수록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가 바로 누군가에게 그리워할 대상을 제공할 의무와 함께 기억을 지켜줘야 할 책임에 있는 건 아닐까.
2020년 들어 벌써 두 번이나 마음이 철렁했다. 한 번은 2월에 북중학교 부지 남동쪽에 있는 건물을 헐 때고 두 번은 지난달 운동장에 펜스를 치고 발굴을 시작하면 서다. 학교 창고로 쓰던 건물을 부순 이유가 극장도 함께 헐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 염려했기에 한 번 철렁했고, 운동장을 발굴하면서 뉴딜 사업상 계획에 포함된 건물 신축을 위한 발굴도 함께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 번 철렁했다.
다행히, 아직은 계속 방치할 뿐 철거를 시작할 기색은 없다. 하지만 예산이란 건 사용 기간 안에 쓰지 않으면 환수되는 게 이치고, 지자체는 환수당하기보다 별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예를 들면 보도블록을 교체한다거나 하는) 예산 소진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럴까 봐 염려하는 거고 말이다.
공주 원도심 극장에서 영화(movie)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하는 질문의 결론이 없다가 된다면 조금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어느 도시에서는 그런 비슷한 콘텐츠로 활용 가능한 공간이 없어 애써 만들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아쉬울 것만 같다.
한탄은 여기까지다. 이 극장의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될지, 그 결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한 없이 0에 수렴한다. 마치 50년 후 공주 인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어떤 방안을 내놓고, 어떤 방식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지 시선을 거두지 않을 생각이다.
거듭 말하지만 물리적 공간은 한 번 파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동일한 모양으로 똑같이 새로 짓는다고 해도 그 공간은 예전과 전혀 다른 것일 뿐 기억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지 못한다. 신중했으면 하는 마음, 몇 남지 않은 다수의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두 번째 글을 시작하며 귀한 인연이라는 말을 썼다.
사실 첫 번째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3년 후 혹은 5년 후에도 무슨 공주에서 영화를 보겠다고 책방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원도심에는 극장도 없고, 극장이 생기지도 않을 거고, 책을 많이 팔아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할 게 뻔한데 그때도 공주에서 살고 있을까?
특별히 귀 기울여 듣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공주 원도심의 인구가 5천, 5백이 되더라도 정 붙이고 살 사람들만 있으면 난 계속 살렵니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인용했습니다. 혹시 무례를 범했다면 얘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원작자 님께)
전적으로 그렇다.
앞서도 적었지만 공주에 책방을 시작하면서 그리던 책방의 모습 대부분이 현실이 됐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연결하는 계기가 되는 공간이길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 거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공주에서 책방을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영화도 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영화가 없어도 공주는 충분히 살기 괜찮은 도시다. 어제처럼 혹은 오늘처럼 반가운 사람들, 정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책방을 계속하는 의미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