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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ug 27. 2018

[북큐레이터의 수다] #2 책은 만능이 아니다.

책은 램프의 지니도 드래곤볼도 아니다.

 안녕하세요, 북큐레이터 서동민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죠.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신뢰합니다. 새로 만나는 책 혹은 다시 읽게 된 책이 보여주는 또 다른 가능성에 설레기도 하고, 새롭게 드러난 세계에 닿기 위해 애쓰기를 계속하고 있죠.

 동전에는 양면이 있고, 삶은 죽음과 닿아 있습니다. 책 역시 예외가 아니죠. 책에서 길을 찾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긍정의 힘,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 꼭 이루겠다는 노력은 아름다우며, 때로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 성공들은 잘못 전해진 사상, 생각, 지식들이 세상에 낳은 비극을 없던 것으로 할 수도, 우리 중 누군가가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일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책에서 길을 찾은 기쁨이 주는 흥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보세요.


 시중에 쏟아지는 연간 수만 권의 책, 그 중에서도 자기계발(종종 자기개발과 혼동하는)을 돕는 책이 거의, 늘, 항상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다수 이름을 올립니다. 닮은 꼴인 책이 무한히 그 갈래를 더해서 재생산되는 게 참 경이롭기만 한데, 좋게 여기자면 그만큼 독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수준 역시 그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태어난 아기라도 뒤집고, 서고, 걷고, 뛰고, 말하는 시기가 제각각이듯 목표가 비슷하다 해도 방향, 시기, 정도, 가능성이 저마다 다르기에 다양한 책이 요구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느냐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앞서 적은 것과 같습니다. 사람마다 상황과 상태, 방향, 정도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는데 일부 자기계발서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읽기만 하면, 혹은 다른 책들을 많이, 열심히 읽어 나가기만 하면 모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된다."고 말이죠. 물론,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지만 모두가 현명하게 분배하는 길을 택하고, 비교 우위에 서기보다 평등하기를 추구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기 보다 서로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애쓰는 성숙함으로 동시에 나아간다면 말입니다.


 저자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이 너무 사실이라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저자들은 그렇게 성공을 이루었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던 경험을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경험해본 사람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이기기는 현실에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수가 허구를 꾸며 당사자를 곤란에 빠뜨릴 생각이 아니라면 '내가 해봤다'는 논리를 깨기 어려우니까요.

 "너희들은 안 해봐서 모른다."와 "말이 통해야지 말야."로 나뉘어 접점 없는 평행선을 이루는 게 고작일 겁니다.

 

 SKY 대학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좋은 학교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SKY 대학을 다녔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고, 성공을 하는 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책을 많이 읽은 사람, 깊이 읽는 사람, 넓게 읽은 사람이 지식의 질적 양적 측면에서나, 사고의 넓이, 깊이에서나 기회를 잡을 가능성에서나 더 많을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책은 무엇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보장할 수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바라는 일이 저마다 다른데 책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걸 이루어주겠노라고 보장할 수는 없는 거죠.


 책을 즐겨 읽고 좋아하는 사람의 소소한 수다 시간입니다. 좀 흥분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 너그럽게 봐주시길.

책이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책이 만능이라며 흩뿌리는 혼란의 씨앗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만능이라 말하는 책조차 만능일 수 없다는 사실과, 책 속의 성공으로 가는 길, 방법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까지요.

 사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겨납니다.

"왜 나만 안 되는 걸까?", "내가 아직 부족한가, 더 해야 하나?", "책 따위 읽어서 뭐해!"

노력, 애쓰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지만 성과에 확신이 없는 노력은 인간을 빠르게 소진시킵니다. 당근만 바라보며 쉬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달린 당나귀는 그 체력이 아무리 탄탄하다 해도 거꾸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일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 나아가지도 못하고 주저 앉게 될 겁니다.


 뭔가를 반짝 쏟아부어 어느 정도의 결과를 얻어내는 일, 이른 바 '벼락치기'가 유용할 수는 있습니다. 묻고 싶은 건 정말 즐거운 벼락치기가 있느냐? 하는 겁니다. 계속 해도, 항상 해도, 언제 해도 즐거운 벼락치기가 있습니까?


 책을 즐거움으로만 읽을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주된 이유는 '읽는 게 좋고 즐겁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을 만능의 상자, 어떤 길로든 통하는 문의 열쇠로 여긴다면 책을 읽는 게 마냥 좋고, 즐거울 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잠깐은 즐거울 수 있지만 만능이란 계속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결과를 내놓는 걸 전제로 합니다.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램프의 지니, 돌덩어리가 된 드래곤볼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램프는 바닷 속 깊은 곳에 던져질 거고, 돌덩어리는 전 세계로 흩어져 버리겠지요.


 책이 만능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책 자체의 효과도 아니겠고, 한 사람 독자의 능력도 아닐 거며, 한 세대나, 한 세기에 이뤄낼 수 있는 일도 아닐 겁니다. 그렇게 많은 책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거기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하나나 둘이 아닐텐데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쓴 이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 만능처럼 보이시나요?


 책에 소원을 빌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선은 책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죠.



수다의 끝으로 책 세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세 권의 책을 묶는 질문이라면 "삶이란 무엇인가?" 정도가 되겠습니다.

난이도는 누구의 삶이 더 수월했고, 어떤 삶이 더 나았다고 확답하기 어려울테니 분량 순으로 정하기로 합니다.

<한 평생>이 가장 가볍습니다. 150페이지 정도죠.

(그러나 출판사/로베르트 제탈러/12,000원)

<에브리맨>은 180페이지 정도입니다.

(문학동네/필립 로스/9,500원)

그리고 <스토너> 390페이지 정도로 두 작품보다 두 배쯤 두툼하군요.

(알에이치코리아/존 윌리엄스/13,000원)

 소개의 이유는 세 작품 모두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라는 겁니다.

좋아하면 추천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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