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사이 달이 나고 나는 서글프게 안도한다
달이 뭐라고 반갑다. 누군가의 난리 중에 작은 안심을 하는 내가 모진가? 아니다, 압도적 위력 앞에 하찮은 인간의 최선이란 작은 행운을 실감하는 일이 아닌가.
왜 하필 비는 사람 없는 데로 몰려가지 않고 사람 사는 데를 찾아올까 하던 때가 있다. 시간당 100mm 비가 다섯 시간동안 쏟아 지던 경험은 궁금증도 씻어 갔다. 비는 사람 사는 데를 찾는 게 아니다. 그저 내릴 뿐.
인간을 돌보지 않는 자연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신적인 거라 생각한다. 재해가 신을 믿는 나는 빗겨가고, 기도가 스스로를 구할 거라는 믿음은 자유지만 신은 신이라 인간일 수 없으므로 인간적 기도에 귀 기울이는 일도 없다. 오히려 신은 무심히 무자비를 베푼다.
시간당 30, 40mm 비에 도시는 마비되기도 한다. 좁고 노후된 데다 정비까지 소홀한 배수로는 치명적이다. 전체가 막힐 필요는 없다. 혈관 한 군데가 막혀도 인체에 치명적이듯 배수로 한 군데만 막혀도 사달이 나는 거다.
무심히 버린 담배꽁초가 산불이 되는 간 알았어도 무심히 버린 담배꽁초가 물난리가 될 수 있음은 몰랐겠지.
"흙이나 낙엽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쓰레기나 담배꽁초로 배수로를 막지는 말아야지."
큰 물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결심이란 고작 이런 거다. 그 일이 소용이 있다고 믿건 소용 없을 거라 여기던 내 알 바 아니다. 다만 배수로에 쓰레기든 담배꽁초든 던져 넣은 경험이 여러 번 있다면 물난리에 조금은 기여했음을 기억하라는 거다.
태풍, 홍수처럼 거대한 규모의 재난 앞에 인간은 작고도 하찮다. 수천 평 땅을 쓸고간 큰 물, 비닐하우스니 집 지붕 수천 개를 걷어간 큰 바람을 겪으며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이다.
"그럴 수 있나?"해도 소용 없다. "고작 그 정도가 최선"인 상황도 있는 거니까.
나를 비켜 타인을 찾아간 큰 불운에 작은 안심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그러면서 연민을 잃지 않아야 인간이다. 내 하늘에 뜬 달, 그 창문만 한 풍경에 안도하는 게 인간이다.
고개를 들자. 그저 고개를 들어보자.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