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폐기하지 말아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고 한다.
내 마음도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는가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타인의 마음을 아는듯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오래 걸려 읽었다.
일단 초반에 배경을, 인물을, 시간을, 공간을 세밀하게 설정하는데 조금은 질린 탓이 컸다. 장편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치밀하달까.
중간을 넘기면서 이야기에 속도가 붙었다.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마지막 즈음에는 새벽까지 읽어서 마쳤다.
처음 느낌으로 상당한 혹평을 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그래도 괜찮았다 생각했다.
아쉬움은 있다. 지나치게 치밀했다는 느낌 탓일까. 오히려 추리소설의 구성에 닮아 있다는 인상이 남았다.
무수한 복선을 깔아 둔다.
인물, 사건, 시간, 공간 등 다방면으로 촘촘히.
후반, 소설로는 종반으로 가면서 깔아둔 복선을 회수한다. 지나간 서술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왜 그렇게 적었는지 납득하게 된다.
여기서 하나의 아쉬움이 생긴다.
소설은 제목부터 <경애의 마음>이다. 하지만 소설의 구성과 결과에서 받은 인상은 마음, 감정보다는 구조, 이성으로 짜맞춘 이야기라는 거였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때로는 의외여도 좋았을 설정들이 너무 질서정연하게, 한치의 틈도 없이 맞아 떨어져 만들어지는 결말.
중반 이후, 그러니까 주인공 상수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겪는 곤란에서부터 결말까지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이건 성공인걸까, 실패인걸까.
성실하고도 꼼꼼히, 그러니까 열심히 쓴 소설이구나 하는 느낌은 마음 한 구석에 짠한 여운을 남겼다.
첫 장편 소설이었으니, 다음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읽던 도중 계속 거슬리던 게 외래어 표기였다. "김금희 작가가 원래 이런 식으로 썼나?"하며 몇 부분을 넘어갔다. 그러다 문득 찾아온 깨달음.
아하! 이 소설, 창비였지?
(너무, 너어~무 창비)
그랬다. 창비였다. 창비만의 독특하지만 거슬리는 외래어 표기가 눈에 밟혔던 거다. 뭐, 출판사 방침이니 그러려니 하고 억지 이해를 했으나, 작가는 납득한 걸까 하는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참 어렵다.
이 소설 화자처럼 모든 마음의 갈등, 방향, 변화를 모두 알 수 있다면 조금은 수월하겠다. 그러나 역시 그리 즐겁지는 않으리라.
여지가 없이 화자가 읽어내는 대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마음, 이야기의 흐름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내 내키지 않았던 것처럼.